지난 2월 27일 강타한 진도 8.8의 지진 이후, 칠레는 사회적 지진을 경험하고 있다. 산티아고의 기독교휴머니즘 대학(Universidad Academia de Humanismo Cristiano)의 인류학 교수 엘리아스 파디야(Elias Padilla)는 “칠레 경제기적의 취약점이 드러났다.... 피노체트 독재정부 이래 칠레가 추구한 자유시장,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의 치부가 드러났다”라고 말한다.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불균등한 나라 중 하나이다. 국민 14%가 절대빈곤층이다. 상위 20%가 전체 소득의 50%를 취하는 반면, 하위 20%에게는 5%만이 돌아간다. 2005년 세계은행이 124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칠레는 최악의 소득분배 국가 중 12위를 차지했다.
걷잡을 수 없는 자유시장 이념은 많은 국민에게 깊은 소외감을 안겨주었다. 비록 중도파와 좌파 정당 연합이 20년 전에 피노체트 체제를 대체했으나, 이는 나라를 탈정치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의 통치로 귀결되었다. 그리하여 중도-좌파 연합은 몇 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를 장악하고, 독재를 무너뜨린 대중 조직과 사회운동들을 따돌렸다.
지진 발생 3일 후에 전 세계로 타전된 칠레 남부의 약탈과 사회적 혼란은 이런 이유로 발생했다. 칠레에서 제2의 도시 콘셉시온(Concepci?n)은 지진으로 사실상 초토화되었고, 시민들은 이틀 동안 중앙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지난 세월, 동네 가게와 군소 상점들을 대체한 슈퍼마켓 체인점과 백화점들은 굳게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원한폭도로 표출된 대중의 실망감이 백화점 습격으로 이어지고 모든 것을 카트에 실어냈다. 백화점 슈퍼의 식료품뿐만 아니라 구두, 의류, 플라즈마 TV, 휴대폰까지. 이는 단순한 약탈이 아니다. 소유와 상품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원한이다. ‘점잖은 사람’들과 거대 미디어들은 이들을 룸펜, 폭도, 범죄자라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칠레대학 시민안전연구센터(Centro de Estudios en Seguridad Ciudadana)의 우고 프룰링(Hugo Fruhling)은 “사회적 불균등이 클수록, 범죄도 늘어난다”라고 설명한다.
폭동으로 귀결되기 전의 이틀 동안 바첼레트 정부는 칠레의 비극을 이해하고 다루는 데 무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많은 장관이 여름휴가를 떠났고, 집권을 앞둔 억만장자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우파 정부에게 사무실을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라 자신들의 상처만 달래고 있었다. 바첼레트는 지원을 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진이 난 토요일 아침, 바첼레트는 군에 헬기를 준비하라고 명했다. 콘셉시온으로 날아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일요일 아침까지 헬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순시는 포기됐다.
카를로스 L.이라는 익명의 남자가 쓴 e메일이 칠레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칠레 역사에서 그렇게 강력한 수단을 ?신학적ㆍ경제적ㆍ정치적ㆍ조직적 수단?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사로잡히고, 잠잘 곳과 물과 음식과 희망을 필요로 하는 전 지역의 급박한 사회적 요구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못한 정부는 또 없었지 않았나 싶다”라고 적고 있다.
월요일, 콘셉시온에 도달한 것은 구호물자나 지원이 아니었다. 주민에게 집밖을 나오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수천 명의 군인과 경찰이 트럭과 비행기로 이동해 왔다. 콘셉시온 거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건물들은 불에 탔다. 시가전 양상을 띠자 또 다른 시민들은 집과 동네를 지키려고 무기를 들었다. 화요일, 구호물자가 마침내 대규모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군대와 함께였고, 콘셉시온이 있는 남부 지방은 더 군사화되었다.
미국 국무부 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지진 전에 이미 예정된 라틴아메리카 순방의 일환으로 화요일에 산티아고로 가서 바첼레트와 피녜라를 만났다. 힐러리 클린턴은 비행기에 20대의 위성전화를 싣고 기술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지진 뒤에 우리가 아이티에서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통신이었다”라고 말했다. 칠레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의미 있는 구호물자를 나눠주기 전에 군대부터 보내 포르트프랭스를 통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유산
≪월스트리트 저널≫이 이런 논란에 뛰어들었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지지하기 위해, 브레트 스티븐스(Bret Stephens)의 ?어떻게 밀턴 프리드먼이 칠레를 구했나?라는 기사를 실었다. 스티븐스는 프리드먼의 “영혼은 토요일 이른 아침, 칠레를 보호하려고 상공을 맴돌았음이 확실하다. 다른 곳이었으면 대참사로 귀결되었을 비극인데, 칠레는 프리드먼 덕을 크게 보았기 때문에 이를 견뎠다”라고 확언했다. 또한 스티븐스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늑대가 와서 바람을 불어 집을 날리려 했을 때, 칠레인들이 벽돌집에 살고 있었던 것은 ?반면 아이티인은 수숫대로 만든 집에 살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다.”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건축 법규”를 지니고 있다. 피노체트가 프리드먼 류의 경제학자들을 장관에 임명하고, 뒤이은 민선 정부들도 신자유주의를 고수해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분이다.
이런 시각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허핑턴 포스트≫에 올린 ?칠레의 사회주의적 보강재?(Chile’s Socialist Rebar)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최초의 지진 관련 건축 법규를 제정한 것은 1972년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였다. 그 법규는 후에 더 강화되는데, 피노체트가 한 일이 아니었다. 1990년대에 다시 들어선 민선정부에 의해서였다.
둘째, 언론정보ㆍ조사센터(CIPER: Centro de Investigaci?n e Informaci?n Period?stica)는 3월 6일 산티아고 광역권에서 지난 15년간 건축된 주택단지와 고층건물 23개소가 지진 때문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건축 법규가 지켜지지 않아서, “건축회사와 부동산 기업의 책임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나라 전체로는 인구 1,700만 명 중 200만 명이 집이 없다. 지진으로 파괴된 집 대부분이 어도비 벽돌이나 기타 부실 건축자재로 건축된 것으로, 칠레의 대규모 사업과 산업에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을 공급하면서 확산된 빈민가에 주로 위치해 있다.
지진이 드러낸 사회적 불균등을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부가 바로잡으리라는 희망은 거의 품기 힘들다. 칠레 최고의 부자인 피녜라, 피녜라의 보좌진과 각료들이 건축 법규의 무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건축사의 대주주들이기 때문이다. 도시 치안 확립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피녜라이기에, 그는 바첼레트가 지진 직후 군을 더 빨리 배치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저항의 신호칠레의 역사적인 대중 조직들과 기층 민중이 다시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 60개 사회단체와 NGO 연합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조직된 시민들은, 이런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도, 칠레인 수백만 명이 겪고 있는 사회위기에 긴급하게, 조속하게, 창의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각양각색의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공동체들의 잠재력과 연대를 보여주었다.” 이 성명은 “재건 계획과 모델을 모니터”할 수 있는 권리, “그래서 공동체가 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피녜라 정부에게 요구하면서 끝을 맺었다.
[우석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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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Global Alternatives 사이트에 게재된 것을(
http://globalalternatives.net/node/112) 필자의 허락을 얻어 번역하였다. 필자인 로저 부르바흐(Roger Burbach)는 살바도르 아옌데 시절을 칠레에서 보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미주연구센터(CENSA: Center for the Study of the Americas)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