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형_200912_라틴아메리카와 오바마 행정부 1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 초 화기애애했던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관계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선린외교 정책을 연상케 하는 발언을 한 바 있고, 지난 4월 미주정상회담에서도 라틴아메리카를 향해 화해의 손짓을 했다. 룰라, 차베스, 카스트로 모두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지난 6개월간 미국과 남미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어 갔다.
분란의 원인은 콜롬비아에 7개 군사기지를 조차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한 정책이다. 미국과 콜롬비아는 마약 거래와 게릴라 소탕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남미의 인접국들은 주변의 에너지 자원을 통제하기 위한 교두보 구축이라고 본다. 콜롬비아는 반미 성향의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 및 에콰도르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아마존 지역에 연해 있다. 카리브와 태평양 양쪽 바다에 접해 있어 지정학적으로도 요충지다. 중남미 해역을 통제하는 제4 항모가 필요할 경우 기항도 할 수 있다. 남미의 맹주를 꿈꾸는 브라질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룰라 대통령은 여러 차례 남미국가연합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미국과 콜롬비아에 항의 표시를 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냉담했다. 미국의 계산법은 무엇일까?
첫째,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염두에 둔다면 라틴아메리카에서 더 많은 석유를 조달해야 하지만, 반미 성향의 정부들이 등장하여 안정적 공급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반전 카드가 필요하다. 둘째, 콜롬비아는 물론 아마존과 브라질에도 많은 에너지와 전략적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 지역에 대해서 미국이 확실히 통제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셋째, 아마존 지역에 수로와 도로망을 연결하는 인프라 통합 사업이 완성되면 중국으로 향하는 물류는 남미에서 콜롬비아 항구를 통해 태평양으로 연결된다. 남미의 대 중국 물류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넷째, 미국은 브라질이 남미의 맹주로 부상하는 데 대해서도 견제를 하고 싶다. 브라질은 석유 매장량 5위, 우라늄 매장량 7위, 종 다양성에서 1위를 하는 자원 대국이다. 브라질의 대국화는 자연히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위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종의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가 라틴아메리카를 ‘정치적 진공’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래서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가 반미의 소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확실하게 ‘뒤뜰’을 관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6월 있었던 온두라스 쿠데타에 대해서도 방관자적 입장을 펴 헌정질서 교란에 대한 면죄부를 제공했다. 헌정 파괴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미주기구 헌장에도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쫓겨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차베스가 주도하는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적 대안’(속칭 ‘알바’)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는 과두제 세력이 지배하는 온두라스를 개혁하려 했지만, 권력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데서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다. 그동안 온두라스는 친미 국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 연고를 무시하고 차베스를 흉내내려 한 셀라야에게 미국은 냉담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라틴아메리카 우익 세력에 새로운 기회를 엿보게 하는 사인으로 읽힐지도 모른다. 파라과이에서도 해방신학자 출신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을 군부와 보수적 의회가 합심하여 밀어내려는 쿠데타의 루머가 있기도 했다. 우경화 도미노가 향후 관전 포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