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잘사는 동부·가난한 서부…분열 위기

2008-05-12l 조회수 3013


볼리비아가 ‘잘사는 동부’와 ‘가난한 서부’로 분열될 위기에 놓였다.

4일(현지시간) 실시된 동부 산타크루스주 주민투표에서 자치권 확대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사실상 통과된 가운데 베니, 판도, 타리하 주 등 다른 동부 지역에서도 다음달 잇달아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가 열릴 예정이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번 주민투표는 불법”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5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주민투표 출구조사 결과 주 정부 자치권 확대안에 대해 86%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산타크루스주는 자치권을 확대해 연방정부로 이관되던 에너지·농업 부문 조세수입을 확보하고, 연방정부에 버금가는 행정·입법 기능과 경찰력도 갖출 계획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번 투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전문가들은 국가 분열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위기에는 동서로 나뉜 인종·경제적 갈등이 녹아있다. 볼리비아는 지역적으로 백인들이 집중 거주하는 동부와 인디오가 많이 사는 서부로 나뉜다. 특히 석유·천연가스 매장지와 농경지가 동부에 몰려있는 탓에 지역 갈등이 깊어졌다. 주민투표를 실시한 산타크루스주의 경우 남미에서 베네수엘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고, 볼리비아 경작지의 65%가 집중돼 있다. 볼리비아 국내총생산(GDP)의 30%, 전체 농축산물의 72%가 산타크루스주에서 나온다. 산타크루스주 등 동부의 백인들은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사회 기득권층을 형성한 반면, 인디오들은 오랫동안 서부의 안데스 산맥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왔다.

이런 뿌리깊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06년 볼리비아 사상 처음으로 인디오 출신 모랄레스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부터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에너지산업을 속속 국유화하고, 인디오들에게 유휴지를 나눠주는 대신 부자들의 1인당 토지소유는 제한하는 좌파 개혁을 단행했다. 인디오들은 모랄레스의 정책을 열렬히 환영했지만 동부 주민들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산타크루스주는 주민투표를 취소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투표를 강행했다. 루벤 코스타스 산타크루스 주지사는 투표가 끝난 뒤 “오늘 새로운 볼리비아가 탄생했다”며 승리를 알렸다. 다음 달 베니 등 3개 주에서도 주민투표에서 자치권 확대안이 통과될 경우 볼리비아의 분열은 물론 남미 좌파 정권들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모랄레스와 함께 ‘좌파 3인방’을 이루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이번 투표를 한목소리로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는 국가를 분열시키려는 시도”라면서 “모랄레스 정부와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입력 2008-05-06 10:26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