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일전’ 기다리는 볼리비아

2008-08-07l 조회수 2856


 기사입력 2008-08-07 00:42 |최종수정2008-08-07 09:07 
10일 정·부통령 등 신임투표. 부유층 - 빈곤층 맞대결 양상. “누가 이겨도 분열상 드러내”
볼리비아가 ‘운명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10일 치러지는 정·부통령과 주지사 신임투표가 그 무대다. 표면적으로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진퇴 여부가 핵심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동부 저지대의 스페인계 부유층과 안데스 고산지대의 빈곤층 원주민 세력 간 맞대결이다. 볼리비아 일간 엘 데베르는 “여론조사 결과 모랄레스가 54%의 찬성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난 4일 전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투표는 볼리비아의 분열상을 드러낼 것”(볼리비아 언론인 후안 카를로스 로차)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모랄레스는 2005년 12월 대선에서 압승하면서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됐다. 코카(코카인의 원료) 재배 농부 출신인 그는 취임 후 과거 경제적 혜택에서 소외돼온 원주민과 저소득층 보호에 우선순위를 뒀다.

6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모랄레스는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해외 석유·천연가스 기업들과 계약을 변경해 볼리비아가 더 많은 수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했다. 2005년 6억2900만달러이던 도로 등 공공부문 투자도 2007년 11억달러로 늘렸다. 에밀리오 핀토 마린 예산처 차관은 “과거의 정부는 기업인들이 부를 창조해 이것이 (빈곤층에) 흘러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지만 이런 일(부의 재분배)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소득 재분배의 정치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 전환은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부유층은 물론 모랄레스의 지지자이던 중산층의 상당수까지 모랄레스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특히 천연가스 산업과 농업을 주도하며 ‘경제적 수도’ 기능을 해온 산타크루스를 비롯해 베니·판도·타리하 등 동부 4개 주는 반(反) 모랄레스 전선의 선두에 서있다. 산타크루스 지역이 가장 반발하는 것은 토지개혁 문제다. 집권 사회주의운동당(MAS)은 지난해 11월 개헌을 통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를 일정 면적으로 제한했다. 과거 동부 지역 대지주들은 엄청난 면적의 토지를 소유하며 각종 이익을 누려왔다.

산타크루스 등 동부 4개 주는 지난 5~6월 주민투표를 통해 주 정부가 세금·재정·천연자원 통제권을 갖는 방향으로 자치권을 강화했다. 이 지역에서는 대통령 신임투표를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격렬한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산타크루스에서 반 모랄레스 운동을 이끌고 있는 카를로스 답도웁은 “모랄레스가 승리하더라도 산타크루스의 자치권 확대를 수용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비아의 분열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지리적으로도 심각하다. 대부분 원주민인 안데스 지역 주민들은 스페인계 뿌리를 가진 산타크루스 사람들에 대해 ‘인종주의적’이라고 비난한다. 아이마라 원주민인 펠리페 몬테빌라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권력을 누린 사람들에겐 모든 게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비아 경제학자인 호르헤 그레이 몰리나는 현 상황을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는 정치적 쟁투를 목격하고 있다. 이는 단지 지방분권이나 자치권에 대한 다툼이 아니다. 누가 볼리비아를 통치할 것이냐를 둘러싼 전투다.”

<김민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