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의 쿠바, 정권은 안정.개혁은 미흡

2008-08-28l 조회수 3167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 취임 6개월
사회주의.공산당 1당체제.통제경제 고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류종권 특파원 = 라울 카스트로가 지난 2월24일 쿠바 의회에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지 6개월이 지났다.

라울의 형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당 제1서기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라울의 국가평의회 의장 취임 이후 쿠바의 권력구조와 국가체제, 사회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는 국제적인 관심사였다.

라울은 형에 비해서는 카리스마가 약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정권 안정화에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유지해 온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공산당 1당체제와 통제경제 노선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으며 취임 후 시행한 개혁 조치들도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피델이 2006년 7월31일 장출혈 수술을 받은 뒤 헌법 94조에 따라 국가평의회 부의장 자격으로 국정을 운영해 오다 의장직을 물려받은 라울은 국군통수권을 쥐고 있고 국가평의회와 공산당에 최측근들을 배치했다. 형의 후광도 아직 있으나 라울은 정권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했다.

라울은 그동안 전력부족을 이유로 엄격히 제한해 온 컴퓨터와 휴대전화, 전자레인지 등 전자제품과 스쿠터의 소유를 허용하고 내국인들의 호텔 이용제한을 철폐하는 등 조치를 단행했다.

그는 또 2건의 유엔 인권 협약에 서명했으며 유휴 국유지를 농협 혹은 개인에 장기임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정치범들을 부분적으로 석방하고 국민들의 국내외 여행을 어느 정도 완화하기도 했다.
집권하면 저임금과 2중 화폐정책 등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경제개혁 조치이며 정치적으로도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당초 라울이 의장에 취임하면 개혁 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예상하기도 했으나 기대했던 '본격적인 개혁조치'는 집권 6개월이 지났으나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라울이 국방장관으로 있으면서 관심을 표명했다는 점진적 개방을 기조로 하는 중국식 경제체제의 도입 가능성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일부 관측통들은 라울이 올해 77세의 고령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체제 유지에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개혁.개방은 이미 물건너 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국민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기본임무에 충실하면서 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섣부른 개혁 모험보다는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라울 의장은 지난 7월11일 국민이 경제적으로 생존 경쟁력이 있고, 평등을 위한 과도한 국가보조를 없애는 '실용적 공산주의'를 준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국영 TV를 통해 녹화 방송된 국가평의회 연설에서 라울은 "사회주의는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의미하지만 평등은 권리와 기회와 평등이지 소득의 평등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체제 개혁을 통한 변화보다는 실용을 기조로 한 능률을 강조하면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 진다.

쿠바 정국은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009년 말 공산당 전당대회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동안에 병상에 있는 피델이 사망한다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피델이 이미 은퇴를 선언하고 병석에 있지만 아직 그의 영향력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미국에서 대선을 통해 등장하는 새로운 지도자가 대 쿠바 정책을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라울의 정책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 변화가 이뤄질 것인 지 여부는 내년 말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를 전후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이 전당대회에선 쿠바의 미래를 위한 정치, 경제 의제를 설정하고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공산당 최고직인 제1서기직을 유지하고 있는 피델의 후임자도 선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은 "라울은 형 피델과 같은 카리스마는 없으나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업무에서는 냉혹할 정도로 효율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의 냉혹한 효율성이 향후 어떻게 발휘될 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라울이 건강에 문제가 있고 특히 과음이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칠 수도 있다며 본격적인 개혁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r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