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라울의 개혁’ 신세대가 참아줄까…기로에 선 쿠바

2008-12-26l 조회수 3125

기사입력 2008-12-25 18:38(경향)


ㆍ카스트로 형제 건재…‘빈곤의 그늘’ 젊은층 욕구 변수

내년 1월1일로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사회주의 혁명이 50주년을 맞는다. 옛 소련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뒤에도 쿠바는 북한과 함께 외부세계에 문을 닫아걸고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지키는 몇 안되는 국가로 남아 있다.

반세기 혁명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극도로 엇갈리는 가운데, 쿠바 정부는 경제난 속에서도 자축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959년 1월1일 쫓겨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살던 대통령궁(현 혁명박물관)에서는 혁명 기념 스카프를 두른 어린이들이 기념식 준비에 한창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아바나에서는 카스트로 미화 작업이 한창이다. 라팜파 대로에서는 며칠 전부터 카스트로의 인간적 면모와 혁명의 고뇌 등을 담은 <이것이 피델이다(Asi es Fidel)>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25일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가 전했다. 일요일마다 킨타베니다 광장에서는 카스트로 예찬 집회가 열린다. 공산당 간부들은 “피델에 필적할 혁명가는 레닌과 호찌민 정도” “피델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영광”이라며 찬양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 속에서도 정권을 유지해온 것 자체가 카스트로에게는 ‘승리’라 할 수 있다. 50년 동안 미국에서는 대통령 10명이 집권했으나 쿠바의 권력자는 카스트로뿐이었다. 쿠바 경제는 낙후돼 있지만 지표로만 보면 세계 최빈국은 아니다. 교육·보건의료 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이며, 중남미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문자 해독률·평균 기대수명을 자랑한다. 노년층들은 “바티스타 시절의 쿠바는 모든 것을 미국에 내다 판 나라였다”며 혁명의 정당성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폐쇄적 사회주의와 독재체제의 폐해는 무시할 수 없다. 90년대 소련 붕괴 뒤 경제위기를 맞은 쿠바는 자급자족과 사적 교환 체제를 일부 허용함으로써 간신히 파국을 면했다. 그러나 과학기술 발전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고 경제성장은 세계 수준에서 한참 뒤처졌다. 혁명 이후 100만명이 독재와 빈곤에 지쳐 쿠바를 떠났다.

2년 전 장출혈로 수술받은 피델은 동생 라울 국방장관에게 권력을 일시 이양했다가 올 2월 최고지도자인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넘겼다. 미 언론들은 “카스트로가 여전히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고 있다”고 보도하지만, 라울 체제가 일단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라울은 올 여름 쿠바를 강타한 허리케인 피해에 대한 구호작업을 서둘러 긍정적 평가를 받았고, 대외관계 개선도 적극 추진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피델은 이미 80대이고, 라울도 내년이면 78세가 된다. 라울은 중국보다 더 느린 속도의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정책은 ‘페르페치오나멘토(perfeccionamento·효율화의 완성)’, 즉 시장경제에 문을 열기보다는 체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당국의 통제 속에서도 세계와 ‘접속’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느리디 느린 개혁을 참고 기다려줄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AP통신은 “래퍼, 게이, 블로거, 위성TV를 몰래 시청하는 10대들, 문신과 피어싱으로 치장한 젊은이들이 라울의 최대 적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정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