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0l 조회수 2827
오바마는 이달 초 유럽 순방 때처럼 이번에도 ‘듣는 외교’에 주력했다. 그는 “배울 것이 많이 있다”면서 “좀더 효율적으로 함께 일하기 위해 많은 걸 듣고 이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남미 정상들에게 “모든 문제의 탓을 북쪽(미국)으로만 돌리려고는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회의 첫날인 17일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도 통역을 사이에 놓고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어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도 만났다.
차베스의 단짝인 모랄레스는 오바마 정부의 관계개선 의지를 높이 평가한 뒤 “하지만 볼리비아는 아직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조치를 주문했다. 모랄레스는 지난해 마약밀매 연루 혐의로 자국 주재 미국 대사를 추방했다.
오바마는 로널드 레이건 정권 때부터 미국의 눈엣가시였던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과도 악수를 했다. 1984년 대통령에 당선된 오르테가는 재임 기간 내내 미군이 지원하는 콘트라 반군과 싸우다 90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후 절치부심 끝에 2006년 다시 집권했다.
오르테가는 오바마와 인사한 직후 50여분에 걸쳐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61년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부터 거론하며 미국의 잘못을 열거했지만, 오바마에게 화살을 돌리지는 않았다. 이는 ‘미국은 밉지만 오바마는 미워하지 않는’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의 이중적 감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됐다.
오바마는 오르테가의 연설 뒤 “내가 생후 3개월 됐을 때의 일(피그만 침공)로 날 비난하지는 않아줘서 고맙다”고 재치있게 받았고, 정상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18일 오찬 뒤 차베스는 “다음 회의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열리길 바란다”고 말해, 미국이 62년 제명한 쿠바를 미주기구에 복귀시켜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도 오바마의 화해 외교를 높이 평가하면서 “하지만 결국 쿠바 문제가 미국의 변화된 자세를 보여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