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석유량 사우디 2배? 차베스의 ‘에너지 정권’ 힘 받나

2010-01-29l 조회수 4040

 
베네수엘라에 사우디아라비아의 2배에 이르는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아닌 미 지질조사국(USGS) 과학자들의 추정치다. 아직 단언하긴 이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우디와 중동 중심으로 편제된 국제 석유지정학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오리노코강 일대의 유전지대를 조사해온 USGS 과학자들이 "오리노코 벨트(Orinoco belt)에 5000억배럴 이상의 석유가 묻혀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고 AP통신 등이 23일 보도했다. USGS 조사팀의 크리스 솅크는 "여기서 파낼 수 있는 원유량이 최대 5130억배럴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사우디의 매장량 추정치 2667억배럴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베네수엘라 측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는 아직 공식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전직 PDVSA 간부인 구스타보 코로넬은 "그만한 양이 묻혀 있는지 알 수 없거니와, 묻혀 있다 하더라도 채굴 가능량은 그 25%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 매장량은 국제 지정학의 중요한 변수다. 매장량 추정치가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해당국에는 엄청난 정치적 지렛대가 쥐어진다. 사우디 등 중동산유국들은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조짐이 보이면 매장량 추정치를 늘려 발표하곤 했다. 반대로 이라크의 경우는 20세기 초반 이래로 추정치가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베네수엘라 경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PDVSA는 베네수엘라 최대 기업이자 최대 고용주다.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수출액의 80%, 정부 수입의 50%가 이 회사에서 나온다. 2000년대 들어 우고 차베스 정권은 '에너지 민족주의'를 내세워 PDVSA에 부여됐던 경영자율권을 회수했다. 차베스는 석유를 이용해 주변국들을 규합해왔다. USGS 조사를 뒷받침하는 추정치들이 더 나온다면 차베스의 발언권은 그만큼 커진다.

하지만 파내고 정제할 능력이 없다면 땅속 매장량이 아무리 많은들 소용이 없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현재 극심한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다. 차베스 정부는 이달 중순부터 에너지 공급에 지역별, 시간대별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성난 주민들은 카라카스에서 며칠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1일 석유 생산량은 250만배럴 선으로, 지난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신규 가입한 앙골라와 비슷하다. OPEC 쿼터에 묶여 있는 사우디의 1일 생산량 1000만배럴에는 훨씬 못 미친다.

<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