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예술기행] 쿠바〈4〉 아프리카 영혼을 부르는 마누엘 멘디베

2011-07-04l 조회수 3338

입력 2011.06.29 (수) 17:16

<세계일보>


아프리카 무속과 가톨릭이 섞인 싱크리티즘이 쿠바의 종교 모습이다
그 속에 쿠바인의 삶의 모습이 녹아 있다
그것들을 풀어내는 것이 내 작업이다

아바나 동북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산림으로 우거진 타파스테(Tapaste)지역에 이르게 된다. 산 언덕을 여러번 넘고서야 쿠바 작가 마누엘 멘디베 오요(Manuel Mendive Hoyo·66)의 작업실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험한 흙길이라 운전기사마저도 진땀을 흘렸다. 산비탈 경사면에 자리한 작업실은 정글 속 요새를 방불케 했다. 산 아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지고 있지만 우거진 나무들로 가려져 있어 외부에선 낌새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관리인은 우리 일행을 야외 벤치로 안내했다. 옆에는 새를 키우는 큰 규모의 새장이 자리하고 있다. 수백종의 새들이 연방 조잘거린다. 작가는 지금 깊은 명상에 빠져 있다고 했다. 한참만에 흰 옷을 입은 그가 숲속에서 걸어나왔다. 작업 공간에서 새를 대규모로 키우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나는 새를 너무 좋아한다. 너무나 자유롭지 않은가. 날아다닐 수 있고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창공의 자유다. 그리고 좋건 나쁘건 모든 메시지의 전달자라고 생각한다.” 자연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으로 읽혀진다.

미국, 유럽, 러시아, 일본 등에서 전시를 가진 바 있는 멘디베는 아프리카 영혼을 부르는 듯한 퍼포먼스와 보디페인팅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그의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프랑스 피아크(FIAC)과 스페인 아르코(ARCO) 아트페어에도 초대됐던 그는 꿈, 의식을 통해 나타나는 영혼의 문제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보디페인팅의 경우 공연장에 나타난 벌거벗은 무용수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주술을 외우고, 그들과 놀이하듯 그림을 신체에 그린다. 그림을 하나의 종교적 행위처럼 보여주는 그는 몽상 아티스트 같기도 하다.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가로서도 아프리카에 연원을 둔 쿠바문화를 환기시킨다. 아프리카의 영적 기운을 받기 위해 자주 아프리카 해변을 찾아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지난 1월엔 유명 대가들만 전시하는 멕시코 쿠에바(Cueva)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작품에선 아프리카가 느껴진다. “요루바, 만딩가 등 아프리카 부족 출신들이 스페인계와 혼혈을 이룬 것이 현재의 나의 모습이다. 그만큼 쿠바는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이 크다.” 그의 작품 테마는 종교적 성향이 강하다. 특히 요루바 등 아프리카 민속 신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프리카 무속과 가톨릭이 섞인 싱크리티즘(syncretism·혼합종교)이 쿠바의 종교 모습이다. 그 속에 쿠바인의 삶의 모습이 녹아있다. 그것들을 풀어내는 것이 내 작업이다.” 

정령들의 모습으로 인간과 동식물이 한 화폭에 어우러져 있다. 작가가 ‘자연의 영혼’을 그리고자 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는 자연이 존재이유라고 했다. 자연은 사람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사람은 자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가 아프리카를 자주 찾는 이유다. 시적 영성을 아프리카에서 얻어 온다. “철작업, 나무작업, 회화작업 등에 세상의 서정을 담으려고 한다. 작품이라는 것은 ‘세상의 시’다. 작가의 ‘시’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위해 열려진 ‘시’다.”

그는 꿈과 사랑을 작품의 모토로 삼고 있다. “인간은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좋고 나쁨 등을 모두 겪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다 좋기 위해 창조는 파괴가 된다. 사랑하기 위해서, 꿈을 꾸기 위해서 창작을 한다. 내 작품을 통해 그걸 느끼게 해 주고 싶다.”

그의 퍼포먼스와 보디페인팅은 굿판을 연상시킨다. “내가 하는 것은 신 부르기보다는 하나의 ‘의식’이다. 몸을 통해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몸 그림’, 움직이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쿠바의 민속신앙인 산테리아(Santeria) 의식이 아니다. 내 그림이 영혼을 부르는 작품이 되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는 아티스트가 현대적 샤먼이라 했다. “꿈속에서 뮤즈가 나타나 내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모티브를 준다. 분쟁과 아픔도 동기부여가 된다. 인종차별도 중요 모티브다. 사람들은 모두 마음 안에 자기만의 종교가 있기 때문에 각각을 존중해야 한다.”

그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현존하는 요루바의 무속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다신 종교다. 바다의 신에서 불의 신, 공기의 신, 자연의 신, 농업의 신, 죽음의 신, 병자의 신들이 존재한다. 그 많은 신들이 다 가톨릭과도 연계된다. 그 속에서 하나의 신을 믿고 사람들이 살아간다. “나는 모든 신을 믿는다. 그리고 모든 신이 필요하고, 모든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종교의식은 유별날 것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을 바라보고 감사기도를 한다. 여러 많은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가끔 과일이나 꽃을 바치기도 한다. 오전 8시에 아침을 먹고 저녁 7시까지 작업을 계속 한다. 시에스타(낮잠)도 좋아하지 않는다. 저녁에는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가끔 연극 등 공연장을 찾는 것을 빼고는 11시쯤 묵상을 하고 잠을 청한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의 대화다. 그것이 끝이 없다.”

자연이 있음으로 인간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철조각 작품.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설탕도 안 먹는다. “왜 몸에 좋지 않은 것을 하는지 모르겠다. 고기도 먹지 않는다. 어쩌다가 간혹 닭고기와 생선, 계란을 섭취하기도 한다. 야채가 주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전시 퍼포먼스는 특별하다. 모델의 몸에 그림을 그리면 그가 자연스럽게 춤을 추게 된다. 북소리만으로 관객도 절로 춤을 추게 만든다. “순간적으로 자연에서 오는 힘을 이용한다. 영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때는 음악 없이 고요 속에서도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음악과 그림은 상황연출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의 형상들은 희미하고 흐물흐물하다. 영혼의 모습이다. “영감에서 온 것들이다. 에너지의 모습일 수도 있다. 묵상 또는 꿈속에서 본 형상들이다. 모르는 공간 속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때론 무아의 경지에서 작품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는 여행 등 어느 곳에 가든 그림을 그린다. “가는 곳마다의 에너지가 있다. 에너지가 나를 유혹해 그림을 그리게 한다.” 인터뷰를 마친 그가 숲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의 뒤를 정령들이 따르는 듯하다.

아바나=편완식 선임기자, 〈공동취재: 안진옥 중남미 미술전문가, 권순익 화가, 김영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