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_20100528_에콰도르 원주민운동

2011-03-03l 조회수 2852

지난 5월 13일 에콰도르 국회 의장 페르난도 코르데로(Fernando Cordero)는 원주민 공동체들과 사전 협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새로운 수자원 법(la Ley del Agua)에 대한 최종 표결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최근 에콰도르에서 가장 뜨겁게 논란이 일고 있는 새로운 수자원 법의 제정을 몇 개월 보류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국회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원주민들의 사전 협의”를 거칠 것 제안함으로써, 일단 원주민들의 거센 저항을 잠재우려고 한 것이다. 시간을 벌려는 얕은 속셈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국회가 이렇게 결정한 것은 원주민들의 압력에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이것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에콰도르 원주민들이 벌인 새로운 수자원 법에 대한 피나는 투쟁의 결과이다. 지난 2월에 수자원 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후, 이를 반대하는 원주민들의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 있었다. 4월 이후, 특히 5월에 들어서면서 쿠엔카(Cuenca), 팅구라우아(Tingurahua), 코토파히(Cotopaxi) 같은 안데스의 여러 지방에서 시위가 격화되었다. 원주민들의 저항은 이 법안의 심의가 이루어진 5월 13일에 최고 절정에 이르렀다. 수도 키토에서 새로운 수자원 법에 반대하면서 이 법을 심의 중인 국회 의사당으로 행진하려는 1500여 명의 원주민들과 이를 막으려고 최루탄을 쏘고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경찰 사이에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새로운 수자원 법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원주민 운동조직인 CONAIE와 FENOCIN과 FEINE이었다. 이 원주민 운동 조직들은 이 법이 수자원권의 민영화를 초래하며, 수자원 관리에서 원주민 공동체들의 참여를 배제하면서 결정권을 국가의 수중으로 집중시키고, 대기업들, 특히 광산기업들과 기업농들에게 수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특혜를 주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하여 이 원주민 조직들은 수자원 법안을 몇 가지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첫 번째는 이 새로운 수자원법이 2008년에 제정된 새 헌법이 명시해 놓은 수자원 이용에 관한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헌법에 따르면, 물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이며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원주민들은 물은 사유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헌법은 수자원은 우선 인간들의 소비에, 그 다음에는 식량생산을 위한 관개시설에, 그 다음에는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강물의 양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비 식량 생산 활동에 쓰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원주민들은 막대한 양의 물을 필요로 하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광산업의 어떤 활동도 반대했다. 세 번째로 CONAIE는 사기업들이 수자원을 운영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수자원을 관리, 운영할 기구로 대다수 원주민 조직 대표들과 소수의 정부 대표들로 구성된 ‘다국민 위원회(plurinacional council)'를 창설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요구에 정부와 국회는 원주민들의 요구가 오히려 비합법적이라고 비난했다. 정책조정 장관(Ministerio de Coordinador de Politica)인 도리스 솔리스(Doris Soliz)는 CONAIE의 ‘다국민 위원회’가 비합법적이며, 대신에 중앙 수자원국(AUA)이 수자원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공공정책을 계획하고 이끄는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레아 대통령은 원주민 운동 지도자들이 보수 세력과 결탁하여 자신의 정권에 타격을 입히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며 원주민들을 선동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새로운 수자원 법이 결코 수자원의 민영화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며 에콰도르의 수자원 체제를 더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와 원주민 사이에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며 팽팽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단 국회는 원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최종 의결을 보류함으로써 발등의 불은 껐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원주민들은 더 이상 자연자원에 대한 원주민 공동체들의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한편, 정부는 어떻게든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발 프로젝트들을 담당하고 있는 광산기업들과 결탁하여 광산 활동에 필요한 수자원을 정부나 기업이 직접 관리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인테르아구아(Interagua)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수자원 개발권을 양도받아 활동했다. 새로운 수자원 법은 이러한 양도의 폭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부의 새로운 수자원 법이 원주민들의 협의를 거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적일 것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도입 이후 자연자원의 민영화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원주민들의 지지 속에서 소위 좌파적 진보 정부로 자처하며 등장한 코레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자원의 민영화는 수출을 위한 자원개발과 맞물리면서 속도를 더해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원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예전 정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좌파 정부에서도 자원개발이 이익 증진과 경쟁 고양이라는 원칙들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그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국회가 법안에 대한 최종 표결을 연기한 것은 정부 정책의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단순히 수자원 법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원주민들의 이익과 참여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개발정책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원주민들은 CONAIE를 중심으로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인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