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_20100606_중미 지역통합: 경제의 세계화와 정치적 민주주의의 딜레마

2011-03-03l 조회수 2736

2010년 5월 1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유럽연합-중미 간 제휴협정’(Acuerdo de Asociaci?n Uni?n Europea-Centroam?rica, 약칭 AdA)이 체결되었다. 양 지역의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협정문에 서명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Jos? Luis Rodr?gues Zapatero) 스페인 총리는 이 협정을 통해서 인구 4천만 명의 중앙아메리카가 5억 인구의 유럽연합 시장에 더 가까워졌으며 양 지역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협력 관계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AdA가 발효되면 중앙아메리카는 유럽연합에 매년 2억 6천만 달러를 수출하게 되고, 유럽연합은 중앙아메리카에 2억 4천만 달러를 수출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유럽 이사회(European Council) 의장인 헤르만 판 롬파위(Herman von Rompuy)는 AdA가 양 지역의 경제적·인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중미의 빈곤을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ion) 의장인 주제 마누엘 두라우 바로주(Jos? Manuel Durao Barroso)는 중앙아메리카 통합에 대한 논의는 유럽공동체에 대한 논의만큼이나 오래된 사안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AdA가 중앙아메리카의 통합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중앙아메리카 통합기구(Sistema de Integraci?n Centroamericana, SICA)의 순번 의장이자 파나마 대통령인 리카르도 마티넬리(Ricardo Matinelli)는 기자회견에서 6개 회원국(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리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을 대표해서 AdA를 역사적인 협정이라고 평가하면서 AdA가 효과적인 마약 단속을 통해 중앙아메리카의 안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아메리카가 유럽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좀 더 첨단의 기술과 양 지역의 협력을 통해 마약을 단속함으로써 지역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7년 처음으로 논의가 시작된 이후 줄다리를 계속해오다가 5월 19일 새벽에 유럽연합과 중앙아메리카 6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체결된 AdA에는 무역, 정치적 의견교환, 상호협력의 3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는 자유무역협정도 포함되어 있다. 5월 초에 한 차례 회담이 결렬되었던 것도 유럽연합이 제안한 분유와 치즈 수입에 대한 쿼터가 중미 지역의 생산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준다는 점을 내세워 중미 대표들이 이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북미와 남미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면서도 역사적으로 소외되어왔던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입장에서 AdA는 중미의 독자적인 지역통합과 자립을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이라고 평가되는 이번 협정의 수면 아래에는 중요한 정치적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 미국이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이후 멕시코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중미 지역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영향권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 위해 시도했던 ‘푸에블라 파나마 계획’(Plan Puebla-Panam?)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미국은 중미에서 거점을 상실했다. 더구나 2007년 1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였던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중미에서 미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남미 대륙을 휩쓴 핑크빛 조류가 니카라과를 통해 중미를 덮치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이 지역을 통제할 뾰족한 수가 없었던 미국에게 빌미를 만들어준 사건은 2009년 6월에 발생한 온두라스 군사 쿠데타였다. 마누엘 셀라야(Manuel Zelaya)는 2005년 우익 정당인 자유당의 후보로 출마하여 과두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애초 온두라스 경제를 세계경제 체제에 단단히 결속시킬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지지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강령을 들고 나와 집권했던 셀라야는 점차 진보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인구의 70%가 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최저 임금을 60% 인상하는가 하면 지난 반세기 동안 온두라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고 차베스가 주도하는 ALBA(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에도 가입했다. 셀라야의 이러한 행보는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새로운 헌법 제정을 위한 비공식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발표는 마침내 군사 쿠데타를 발생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셀라야가 재선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려 했기 때문에 그를 축출했다고 주장했지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는 후임 대통령이 선출되는 날 실시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거짓이었다. 월러스틴이 언급한 것처럼 온두라스 쿠데타는 과두적 지배세력이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을 ‘계급의 배신자’로 여겨 본보기로 처벌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셀라야가 수정하려고 한 헌법은 1982년에 통과된 것으로, 당시 온두라스는 미국이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을 공격하는 데 군사기지 구실을 했다. 그 후 온두라스 정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이익을 충실하게 대변했다.
쿠데타 이후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온두라스 정부와 외교관계를 동결했고 아직도 포르피리오 로보(Porfirio Lobo) 정권을 합법적인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온두라스 정부에 대한 외교적 인정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5월 초에는 에두아르도 스테인 과테말라 전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페루 전 법무장관, 캐나다 외교관과 온두라스 여야정치권을 대표한 학자 2명 등 모두 5명으로 구성된 쿠데타 진상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그동안 로보 대통령은 미국은 물론 이웃 니카라과의 좌파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내는 등 국제사회에서 지지기반을 넓혀왔으며 세계은행 등 국제기관도 온두라스에 대한 차관 제공을 재개했다.
AdA 조인식에는 로보 대통령도 참가했고 협정서에도 서명했다. 라틴아메리카 진보 성향 언론들은 AdA의 출범이 사실상 쿠데타를 인정한 것이며 사회운동을 통해 개혁 진영의 집권을 도왔던 민중들의 의사를 정치권이 배반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오랫동안 라틴아메리카를 장악해온 미국의 일방주의와 최근에 커지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한다는 관점에서 AdA의 출범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제의 세계화를 위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이와 더불어 지역통합을 통한 유럽연합과의 교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생물종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보고인 중미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에도 귀기우려야 할 필요가 있다. 중미의 행보가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