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_200909_다시 9.11을 맞은 칠레

2011-03-02l 조회수 2480

1973년 9월 11일 쿠데타로 사망한 아엔데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 동안 칠레 전역에서 2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여전히 칠레의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여전히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수준의 과거사 청산과 이에 대한 서로간의 불만이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는 정치 상황에서, 바첼렛 정부가 취하고 있는 일련의 과거사 관련 조치의 성패는 올 연말과 내년 초에 진행될 대통령 선거 과정을 통해 그 성취와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칠레 정부는 과거사와 관련한 두 가지 의미 있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조치가 과거사 관련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조치를 비판하고, 또 다른 입장은 정부의 조치들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의 조치는 군예산과 관련한 것이다. 바첼렛 대통령은 피노체트 시기 군에 유리하게 수정된 구리보호법(Ley Reservada del Cobre)의 수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피노체트는 1958년 발효된 구리보호법을 수정하여, 수출액의 10%를 국방예산에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바첼렛 정부의 수정안은, 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구리 판매액의 10%에 해당하는 예산 관련 특혜를 없애고, 국방예산을 문민화하겠다는 의지이다. 구리보호법 아래 칠레의 국영 구리회사인 CODELCO가 수출한 구리 값의 10%는 2008년 구리 값의 상승으로 인해,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인당 국방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Instituto de Estudios para la Paz de Estocolmo (Sipri)) 이런 조치는 군 예산을 문민화한다는 명분과 함께, 피노체트 시기의 군부가 지녔던 특혜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또한 군부 독재시기 인권침해와 관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칠레 비밀경찰(DINA) 조직원들과 경찰관들이 여전히 군의 자문역할이라는 명목 하에 매달 최고 2, 200달러의 자문료를 지급받고 있었다. 이런 문제제기와 관련하여, 국방장관은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사법적 판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은 아무런 법률적 문제가 없다고 밝히는 등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 대내외적인 압력에 의해 관련자 13명의 계약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군이 급여 일부분을 갹출하여 인권침해로 기소된 군출신 인사들을 지원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군이 과거사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을 보여준다고 중남미 인권워치 소장인  호세 미겔 비반코(Jos? Miguel Vivanco)는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칠레의 과거사 관련 조치들은 올해 연말의 대선에 의해 새로운 변환점을 가질 공산이 크게 되었다. 마르코 엔리케스-오미나미(Marco Enr?quez-Ominami)가 칠레 대선에 후보로 등록하게 되면서, 피노체트 이후 지금까지 집권해온 중도 좌파성향의 Concertaci?n의 연속 집권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현재 상황은 우파 성향의 <변화를 위한 연합(Coalici?n para el Cambio)>의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n Pi?era)가 37%로 안정적인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이자 콘세르타시온의 보수파를 대표하는 에두알도 프레이Eduardo Frei가 28%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콘세르타시온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역시 사회당 소속의 대통령인 바첼렛의 정치 노선을 이어가겠다는 엔리케스-오미나미의 출마는 대선의 의미있는 변수가 될 것이다. 혁명좌파운동(Movimiento de Izquierda Revolucionaria, MIR)의 창립자인 자신의 아버지인 미겔 엔리케스(Miguel Enr?quez)의 유지 계승을 주장하는 그는 현재 약 17%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칠레 대선에서 콘세르타시온 후보의 승리가 일정부분 우파 진영의 분열에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피녜라의 당선은 유력해 보인다. 현재까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2차 결선투표에서도 현재까지 피녜라가 이 둘 중 누구하고도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저조한 투표참여, 그리고 콘세르타시온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의 지속이 오히려 우파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다. 일부는 구리보호법의 개정 역시 군예산 관련 개혁이라기보다는, 군예산 확보를 위해 CODELCO의 민영화를 반대해 왔던 군부의 압력을 피해 구리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본다.

결국 올해 있는 대선에서는 콘세르타시온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정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칠레의 과거사 청산도 또 다른 전환점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