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_200911_“북극의 눈물”, 적도(Ecuador)의 제안

2011-03-02l 조회수 3820

“더 무서운 것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재앙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극의 축복이던 빙하는 해마다 엄청난 양으로 녹아내리면서 맑은 눈물을 바다에 흘려보냅니다. 거기에는 생활의 기반을 잃어버린 수많은 이누이트들의 눈물, 굶주려 새끼를 돌보지 못하는 어미 북극곰의 눈물도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는 다시 얼지 않을 것입니다. 한없이 녹아내리는 북극의 눈물은 언젠가 해일처럼 우리 모두를 덮칠 것입니다. 재앙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늦추도록 노력하는 일, 이제 일 초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MBC창사특집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을 바탕으로 씌어진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북극의 눈물은 인류가 결단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음을 알리는 자연의 메시지이다. 그 결단을 위해 9월 22일 유엔에서는 반기문 사무총장이 주재하는 사상 최대의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번에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는 1997년에 만들어진 교토협약(온실가스 감축 협약)이 오는 2012년에 효력이 끝남에 따라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협약을 큰 틀에서 다시 재정하기 위해 오는 12월 7~18일 코펜하겐에서 개최될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 15)’의 전초전이었다.
전 세계 언론에서는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인류의 다음 세대를 위한 대결단”이라고 그 중요성을 앞 다퉈 보도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회의는 각국의 이해타산에 따른 대결장의 양상을 띠었다. 가장 중요한 장애 요소는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놓고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관계가 워낙 크다는 점이다. 중국과 인도 등을 필두로 한 개도국의 참여가 없는 기후협상은 무의미하다는 선진국의 주장과 지금까지 지구온난화를 발생시킨 역사적 책임을 개도국에 전가함으로써 ‘기후 변화보다는 당장의 개발’이 시급한 개도국의 현실을 무시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개발보고서’를 인용해서 1850년부터 2005년까지 155년 동안 CO2 배출비중이 고소득 국가는 전체의 64%, 중간소득 국가는 34%, 그리고 저소득 국가는 2%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5년 기준으로만 따지면 상황은 역전된다. 고소득 국가는 CO2 배출비중이 50%로 떨어지는 반면에, 중국과 인도와 같은 중간소득 국가들은 47%로 높아지고, CO2를 포함한 전체 온실가스 배출비중 면에서 보면 중간소득 국가(56%)가 고소득 국가(38%)를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인구 1인당 배출량은 고소득 국가가 더 많다. 고소득 국가의 인구는 10억 명이지만 중간소득 국가는 42억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가장 권위 있는 기구인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은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을 2050년까지 1990년을 기준으로 80퍼센트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때보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당연히 목표치를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엄청난 변화가 필요하다.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돈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가장 경계하는 세력은 기업과 기업을 눈치를 보는 정치 세력이다. 지금까지 강대국들은 빈국에 책임 떠넘기기, 기업들에 특혜 주기, 기업이 분식회계 하듯 서류상에서만 온실가스 줄이기, 안전하지 않고 불확실한 기술로 사람들을 현혹하기, 경제 위기 대처 방식처럼 저소득층 허리띠 졸라매기, 그냥 못 하겠다고 버티기 등으로 감축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교토의정서 비준을 아예 거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코펜하겐 총회에서도 결국 두 그룹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회의가 결렬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한 가운데 라틴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에콰도르의 코레아 대통령이 9월 유엔회의에서 ‘야수니-ITT 이니셔티브’(Yasuni-ITT intiative)로 불리는 제안에 주목해달라고 촉구했다. ‘야수니-ITT 이니셔티브’란 에콰도르의 남미 적도 근처에 위치한 야수니 국립공원에 있는 ITT((Ishping-Pambococha-Tiputini)광구의 유전을 개발하지 않는 대가로 국제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요구액은 유전개발로 인한 정부 수입 7억 달러의 50%에 해당하는 3억 5천만 달러이다. 에콰도르 동북쪽 야수니 국립공원 북쪽에서 발견된 ITT유전에는 약 8억 4,600만 배럴(에콰도르 전체 원유 매장량의 20% 규모)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자선을 하라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희생을 나누자는 것”이라며 “원유를 개발하지 않는 게 최우선 고려대상이지만, 에콰도르처럼 가난한 나라가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만큼 국제사회가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안은 코펜하겐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남-북 갈등을 해소할 윈윈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에콰도르는 전 세계에서 생물종다양성이 가장 풍요로운 나라들 중의 하나이며 다양한 원주민 문화도 잘 보존되어 있다. 다윈 진화론 발상의 진원지인 갈라파고스 군도로도 유명한 에콰도르의 야수니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곳의 하나로 꼽힌다. 식물만 해도 1㏊에서 644종의 나무가 발견됐는데, 이는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수종에 해당한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극빈층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작은 나라 에콰도르의 코레아 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한 이면에는 석유 채굴을 둘러싼 불합리한 구조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100달러 값어치의 원유가 생산돼도 그 나라 국민에게 돌아가는 돈은 고작 2달러 50센트에 불과하다. 75달러를 석유회사가 가져가고 나머지 25달러 가운데 4분의 3이 외채를 갚는데 사용되며 군사비를 포함한 정부 사용 금액을 빼고 나야 비로소 일반 국민 몫이 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를 질 나쁜 좌파 트라이앵글로 표현하거나 걸핏하면 포퓰리즘 딱지를 붙이는 언론들은 “작은 나라의 큰 생각”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코레아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ALBA회원국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대안무역이 기후변화 정상회의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