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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동맹의 탄생

2011-09-23l 조회수 2776

'태평양 동맹'의 탄생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지난 4월 28일 리마에서 '태평양 동맹'이 탄생했다. 칠레의 피녜라, 콜롬비아의 산토스, 멕시코의 칼데론, 페루의 가르시아 대통령은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경제블록을 탄생시켰다. 태평양 동맹은 무역 자유화를 넘어서 서비스, 투자. 인력 이동의 자유화를 추구한다. "심층적 통합협정(AIP)"이라 불리는 "태평양 협정"은 일종의 친미국가들의 계모임 성격을 띠고 있기에, 브라질이 주도하는 메르코수르에 대항하는 통합기구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메르코수르를 바탕으로, 남미국가연합(우나수르)의 결성을 주도했던 브라질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악관은 남쪽의 사태전개를 즐겁게 관전한다.

태평양 동맹의 국가들은 대체로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른 시장개방과 개혁의 모범생들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열렬히 바랐고 지지했다. 멕시코와 칠레는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고, 페루와 콜롬비아는 현재 의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태평양 동맹은 우리나라와도 긴밀한 관계를 지닌 국가들이다. 우리도 이미 칠레와 페루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고, 현재 콜롬비아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태평양의 친미국가들이 결집하면서 2005년 이래 죽었던 미주자유무역협정 카드가 다시금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도 나온다. 

태평양 동맹은 브라질의 지역패권에 대한 제어장치로도 읽힌다. 리마에서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은 순수한 경제적 협력을 위한 것이라고 애써 강변했지만, 브라질 대통령궁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본다. 브라질은 오래 전부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태평양 동맹의 리더 국가인 멕시코는 이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브라질의 후세피 대통령은 3월에 있었던 오바마와의 정상회담에서 상임이사국 문제를 언급했고, 4월에 있었던 후진타오와의 회담에서도 중국의 협조를 부탁했다. 이런 와중에 멕시코의 칼데론 대통령은 리마에서 태평양 동맹국들에게 마약퇴치에도 협력하는 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만약 이 제안을 여타 삼국 정상이 수용한다면, 태평양 동맹은 안보적 차원에서 브라질의 구상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남미국가연합의 집단안보를 담당하는 남미안보위원회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집권여당인 노동자당은 그런 까닭에 일주일 뒤에 열릴 페루 대선의 결선투표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룰라의 선거참모들이 민족주의자 후보인 오얀타 우말라의 캠페인을 돕고 있다. 브라질은 태평양 연안국 가운데 전략적 파트너를 간절히 찾고 있다. 페루가 안성맞춤인 후보 국가이다. 일부 브라질 언론들은 만약 우말라가 게이코 후지모리를 이긴다면, 페루가 메르코수르에 들어오게끔 인센티브를 듬뿍 제공할 것이라는 말을 흘린다. 태평양 동맹에서 페루를 떼어 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만큼 페루의 대선은 라틴아메리카의 지정학 구도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투표를 일주일 정도 남겨 둔 현재 게이코 후지모리가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중국 붐에서 혜택을 본 리마 광역지구에서는 현 단계 발전모델을 훼손할 가능성이 없는 게이코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게이코는 전 뉴욕시장 줄리아니를 동반한 선거유세전에서 강력한 치안대책을 제시하여 중산층의 표를 흡수하고 있다. 우말라는 룰라의 전략을 벤치마킹해서 선거에 임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차베스의 그림자를 의심하고 있다. 이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알프레도 브라이스 에체니케, 페르난도 이와사키를 비롯한 지식인 그룹은 "후지모리 스타일의 독재가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말라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페루의 자유주의자 지식인들은 독재자의 그림자보다는 민족주의자의 변신을 신뢰하고 있다.  
< 2011.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