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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얀타>와 <게이코>의 페루

2011-09-23l 조회수 2799

오얀타와 게이코의 페루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태평양의 리마에서 대서양의 상파울루로 가는 대양 관통도로가 완성되었다. 장장 6천 킬로미터의 도로이다. 버스 요금은 250 달러. 꼬박 5일이 걸리는 길이다. 해발 4천 킬로미터의 안데스 산맥을 넘기도 한다. 브라질은 아시아 시장으로 향하는 물산의 수송비용을 절감하게 되었고, 페루는 남미 경제권과 대서양으로 직접 연결되는 루트를 얻게 되었다. 남미의 경제통합은 물류혁명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조만간 ‘아마존 로드’를 통해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연결될 것이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칠레와 연결하는 안데스 도로망도 완성될 것이다. 모두 태평양 경제권의 부상에 편승하려는 새로운 몸부림이다.

페루는 지난 5년간 평균 7%의 성장을 유지했다. 일차산품 붐과 광산경기가 나라 경제를 일신하고 있다. 중국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있고, 개발 붐이 지역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 빈곤층도 2004년에서 2009년 사이에 49%에서 34%로 감소하였다. 여러모로 놀라운 성과이다. 그런데도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과 집권여당 아프라 당의 인기는 저조하기 짝이 없다.

"페루는 황금의자에 앉은 거지이다.” 19세기의 이탈리아 박물학자 안토니오 라이몬디가 지어낸 이 말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호경기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농촌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광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국가에 내는 세금의 절반은 지방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개발 붐으로 인한 혜택이 골고루 배분되지 않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다. 리마에는 인구 만 명당 의사가 28명이나 되지만, 안데스 지역에는 고작 2명에 불과하다.

지난 4월 10일에 있었던 페루 대선에 국민들은 포퓰리스트 후보 2 명을 골랐다. 오얀타 우말라(48세)라는 퇴역장교 출신이 32%를 얻어 1위를 하였고, 후지모리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가 23%를 얻어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되었다. 페루 경제를 일신하겠다고 나온 전직 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와 수상 출신 파블로 쿠진스키는 고배를 들었다. 사람들은 스탠포드와 프린스턴에서 교육을 받은 기술관료형 리더십을 거부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포퓰리스트 지도자를 택했다.

민족주의자 오얀타 우말라는 지난 대선에서 알란 가르시아에게 패배한 바 있었다. ‘오얀타’는 잉카 장군의 이름으로 민족주의자에게 어울린다. 남부와 산악지방(시에라)에서 많은 표를 얻은 그는 “불평등 해소”를 선거 모토로 내세웠다. 지난 대선에서 차베스와 비슷한 이미지가 중산층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자아냈기 때문에, 이번에는 룰라의 선거전략을 차용하였다. 그는 “페루 국민과의 약속”에서 투자자들과 보수파들에게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약속했다. 자유무역협정도 준수할 것이고, 대미 관계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비내각의 여성총리로 베아트리스 메리노를 지명하여 보수파 유권자들을 안심시켰다. 메리노는 톨레도 정부에서 총리를, 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장 직을 수행했다. 신자유주의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서클 멤버이기도 하다.

게이코는 약관 35세의 여성 정치인이다. 후지모리가 부인과 이혼한 뒤 1994년에서 2000년까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20대부터 대통령 수업을 받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현재 재임 시 있었던 인권침해 관련 범죄로 25년형을 받아 복역 중이다. 후지모리의 강권정치에 향수를 느끼는 유권자도 20%나 된다. 하지만 리마나 대도시의  중산층은 후지모리의 복권과 복귀에 반대한다.
 
6월 5일의 결선투표에서 관건은 중도온건파 유권자들의 향배이다. 우말라의 룰라 스타일 전략이 성공한다면, 일차 투표 탈락자들의 반 후지모리 정서가 유권자들에게 전달된다면 그는 쉽게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페루 선거는 늘 예측불허의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좀 더 두고 봐야 안다.
<2011.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