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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아_20100315_낙태 비합법화 문제

2011-03-02l 조회수 3027

정부가 낙태 문제를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방하면서 임신중절 시술을 하는 산부인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도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겪게 될 인력 부족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해 보고자 내놓은 정책일 것이다. 여성계에서는 여성 신체권을 국가가 결정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반민주적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낙태와 저출산의 문제를 관련짓는 사고가 사회의 모든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돌리는 매우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낙태권 보장과 생명권 보호라는 논란 속에서 사회의 필요에 따라 여성과 태아의 인권이 오락가락하는 실정이다.  
라틴아메리카 경우 낙태를 둘러싼 논란의 사회적 배경이 우리와는 다소 다른 듯하다. 교회와 가부장제, 마초이즘이 낙태를 합법화하지 못하는 가장 막강한 이유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들임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천 명의 여성 중 31명에 육박하는 수가 낙태를 한다. 불법 낙태가 연간 4백만이고 4천명의 산모의 목숨을 잃는데,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출생자수와 낙태건수가 동일할 정도이다. 가톨릭 신자든 비신자든, 낙태를 범죄나 혹은 윤리적 위반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낙태를 범죄시하는 법은 명시된 목적을 지키는 데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교회의 반발은 무시할 수 없다. 교회는 여성의 신체 선택권에 대한 요구가 점증적으로 가시화된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긴장하고 있다 ‘영향력 전쟁’이라고 할 만큼 낙태에 대해 더욱 더 단호한 규제 촉구를 함으로써 사회적 위상을 확인하고자 한다. 따라서 낙태 문제는 정치적 진보성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낙태 불법화에 있어서 브라질 룰라, 아르헨티나 페르난데스, 니카라과 오르테가, 에콰도르 코레아 대통령이 교회와 영합하고 있고,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지지자들과 배치되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여기서 생긴 모순을 앞으로 쉽사리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2010년을 기준으로 진보적 성향의 국가가 11개국에 이른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쿠바,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이다. 우파적 성향의 정권은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멕시코, 파나마, 페루이고 중립적 성향은 과테말라, 도미니카공화국이다. 그럼에도 2006년 니카라과에서는 산모의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강간을 당한 경우라도 낙태할 수 없는 법안이 채택되었다. 2008년 낙태 합법화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무효로 돌아갔고 2009년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임신한 순간부터 생명권을 보장하도록 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오히려 우파 정권이 집권하는 콜롬비아에서는 2006년 강간, 근친상간, 태아기형, 산모 위험의 경우에는 ‘치료적’ 낙태를 합법화시켰고, 멕시코에서는 임신 16주내 산모 요구 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합법화시켰다.
물론 콜롬비아에서 이 법안에 찬성한 5명의 헌법위원장은 교회에서 즉시 파문당했고, 멕시코시티에서 확산된 낙태 합법화에 대한 격노는 멕시코 32주 중 17주에서 보다 엄격한 낙태 금지법을 승인하도록 만들었다.
사회가 진보적, 좌파적 성향으로 바뀐다고 해도 낙태 문제에 있어서는 답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낙태를 범죄시하면서 여성의 신체를 국가가 규정한다는 사실이 젠더 폭력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라틴아메리카는 여성 폭력에 대해 대륙적 차원의 협약(The Inter-American Convention on the Prevention, Punishment and Eradic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이 체결된 유일한 곳이고 모든 국가가 가정 폭력을 처벌하는 상당히 발전된 법률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범죄시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말한다.
낙태에 대한 현 법률을 살펴보면, 칠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은 어떠한 경우라도 낙태를 금하고 있고, 쿠바는 1965년 이래로 12주내 낙태를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있다. 오히려 낙태율이 가임기 여성 천 명 중 21명 이하로 이 지역 평균을 훨씬 밑돈다.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 허용된다. 아르헨티나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우 예외적으로 낙태가 가능하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여성이 자신, 혹은 배우자,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낙태를 선택한 경우 가벼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과테말라, 우루과이에서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의 경우도 낙태가 허용되는데, 우루과이 경우에는 경제적 이유로도 낙태가 가능하다. 콜롬비아, 멕시코, 파나마에서는 태아 기형의 경우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