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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전쟁과 쇼크 독트린

2011-03-03l 조회수 3946

마약 전쟁과 쇼크 독트린

김은중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2006년 취임한 펠리페 깔데론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멕시코는 내란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준(準)전시 상태와 다름없는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전체의 치안 부재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멕시코 국방부(SEDENA)에 따르면 2009년 6월 국가를 방위해야 할 군 병력의 25%가 치안 유지에 투입되었고, 2010년 2월에는 그 수가 더 늘어나 멕시코 군 병력의 거의 50%에 해당하는 9만 4천여 명이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다. 문제는 군의 작전 대상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국민들이라는 사실이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7월까지 대략 25,000명이 사망했고 7,000명이 실종됐으며 20,000명이 체포되었다. 올해 4월 군인들에게 두 명의 소년이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정부의 정책을 비아냥거리는 풍자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했다.

미-멕 국경 도시인 후아레스(Ciudad Ju?rez)는 한때는 마낄라도라(maquiladora) 산업단지의 모범적 사례로 거론되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변했다. 금융자본과 마낄라도라 산업단지에서 생산된 상품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체결된 북미자유협정(NAFTA)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상품보다도 이윤이 많이 남는 마약의 통로 구실을 하고 있다. 실제로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90%는 멕시코를 통해 들어가고 있다. 올해 1월에도 마약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16명의 청소년과 학생이 살해당한 후아레스에서는 2006년 12월 이후 6,300명이 사망했고 부녀자 살해와 아동 살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 결과, 마약 전쟁의 희생제단인 된 후아레스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가 되고 있다. 약 백 오십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에서 발생한 6,300명의 사망자 수는 전체 희생자의 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깔데론 대통령은 사망자의 90%가 마약 조직과 연루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단지 5% 정도만 마약 조직과 연관되었음이 밝혀졌을 뿐이다. 치와와(Chihuahua) 지역의 마약 전쟁 책임자인 호르헤 후아레스 로에라(Jorge Ju?rez Loera) 장군은 기자들에게 “한 사람의 희생자가 더 발생했다고 쓰는 대신에 한 명의 범죄자가 더 줄었다고 써 달라”고 당부했다.


마약 전쟁과 신자유주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멕시코 시민들이 치르는 희생제의를 통해 마약의 공급이 줄어들거나 마약이 이전보다 싼 값에 거래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마약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 마약이 어떤 상품보다도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한 깔데론 정권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5,000명의 죽음 뒤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피해자는 누구이고, 가해자는 누구이며, 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모르는” 전쟁의 목적은 무엇일까?

깔데론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멕시코 전역의 군사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군사화를 통해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마약 전쟁은 1970년대 치아빠스 주, 오아하까 주, 게레로 주, 미초아깐 주에서 벌어졌던 ‘더러운 전쟁’의 연속이다. 그 당시의 피해자들이 전투적인 활동가와 정치인이었다면, 마약 전쟁의 희생자는 대부분이 시민이며, 특히 젊은 남녀, 빈민층, 원주민 여성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만든 사회경제적 배경이 90년대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2006년 선거에서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잡은 깔데론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정당성의 위기에 부딪혔고, 무엇보다도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몰고 온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불법이주자 문제는 경제적 양극화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깔데론 대통령과 군부는 늘어나는 사망자 수가 전쟁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뒤에서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오마바 정부는 마약-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메리다 이니셔티브”(Iniciativa M?rida)로 불리는 군사원조 프로그램에 14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클린턴 정부 때 시작된 “플랜 콜롬비아”(Plan Colombia)는 부시 정부에 들어와 “플랜 푸에블라 파나마”(Plan Puebla Panam?)로 확장되었고 오바마 정부에서 또 다시 “메리다 이니셔티브/플랜 멕시코”를 통해 멕시코 상황에 우회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직/간접적인 개입은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정권 교체와는 상관없이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재난 자본주의와 쇼크 독트린

전문가들이 인정하듯이 미국은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역에서 벌린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 전쟁은 몇 가지 부가적인 목적을 아주 훌륭하게 달성했다. 첫째, 돈세탁을 위한 비밀스런 밀약을 통해 미국의 은행가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었고, 둘째 가난한 농민들과 중소 지주들을 토지에서 몰아냄으로써 지극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풍부한 (천연)자원을 차지할 여건을 조성했으며, 셋째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슬로건은 정치적 반대파, 이민자, 원주민 혹은 거대 자본의 세계 장악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관리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도구일 뿐만 아니라, 넷째 군수사업자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주었다. 결론적으로, 실패한 마약과의 전쟁은 전쟁, 국가폭력, 사회 전체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 전쟁은 ‘대리전’의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콜롬비아 상황과는 다르다. 미국의 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의 경제적 지원은 멕시코 군경이 멕시코 국민을 죽이는 것과는 관계가 없고, 이러한 대량 학살이 마약의 유입을 막거나 마약 가격의 인하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콜롬비아 마약 전쟁을 콜롬비아 반군(FARC)과 연관시키는 것과는 달리 멕시코 마약 전쟁을 “실패한 국가”(Estado fallido)라는 개념과 연관시킨다. 그들에게 실패한 국가란 범죄, 부패, 무능력한 통치력 때문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국가를 뜻한다. 완곡한 표현을 뒤집어 보면 실패한 국가라는 개념은 미국의 개입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명분이며 새로운 개념의 제국주의 정책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했듯이 미국은 폭력적 극단주의와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폭력적 극단주의에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테러리스트들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지역들과 실패한 국가들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미국 CIA는 언제든지 붕괴될 위험에 처한 실패한 국가로 멕시코와 파키스탄을 거론했고, 오바마는 2009년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에 쿠바계 미국인 까를로스 파스꾸알(Carlos Pascual)을 임명했다. 그는 국가 재건(nation-building) 분야의 전문가로 27년 동안 아프리카, 동유럽, 유라시아, 중동 등 분쟁 지역과 아이티와 같은 재난 국가에 파견되어 소위 실패한 국가들의 국가 재건 사업에 관여해왔다. 대사로 취임한 빠스꾸알은 멕시코에 미-멕 정보기관협력 사무소를 개설하고 펜타곤, CIA, FBI, DEA에서 파견된 직원들의 활동을 지휘하고 있다.

저서『쇼크 독트린』에서 전쟁, 테러, 자연재해 같은 총체적인 대규모 충격을 받고 대중들이 방향 감각을 상실한 틈을 이용해 경제적 쇼크요법을 밀어붙이는 방식의 자본주의를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라고 명명한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빠스꾸알을 쇼크요법 전문가로 지목했다. 나오미 클라인은 이 책에서 1973년 피노체트 쿠데타로부터 1989년 천안문 사건, 1991년 소련의 붕괴,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재난의 현장을 덮친 쇼크 독트린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는 2001년 9·11사태 이후 부시 정권의 경제정책을 “모국으로 돌아온 쇼크요법”이라고 말함으로써 적어도 재난 자본주의에게는 감상적인(?) 민족주의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5년 동안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협정의 파트너였던 멕시코가 실패한 국가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3류 국가 내부의 문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멕시코 마약 전쟁은 클라인이 분석하는 쇼크 독트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위태로운 멕시코의 미래와 남아메리카 지역 통합

마약 전쟁이 쇼크 독트린의 변형된 판본이라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특히 깔데론 정부가 2006년 10월 작성한 “2030 멕시코 플랜/위대한 비전 프로젝트”(Plan M?xico 2030/Proyecto de Gran Visi?n)에서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에너지, 생태보존, 교육, 사회보장, 공공서비스 부문 등의 민영화를 주축으로 하는 “2030 멕시코 플랜”은 1917년 멕시코 혁명 헌법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멕시코의 주권을 미국에게 양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멕시코-미국의 안보와 국경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북미안보번영동맹”(Alianza para la Seguridad y Prosperidad de Am?rica del Norte, ASPAN)은 남아메리카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차단하고 멕시코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는 의도이며 깔데론의 취임과 더불어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은 이러한 동맹의 필연성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쇼크요법이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마약 전쟁에 대해 떠드는 가운데 깔데론 정권은 오히려 에너지 부문의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멕시코 전력노조, 광산 노동자, 석유 노동자가 중심이 된 사회운동단체들이 이러한 민영화 정책에 맞서 투쟁했지만 깔데론 정권은 강경하게 이들의 투쟁을 진압했고 44,00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넓은 맥락에서 볼 때 마약 전쟁이라는 쇼크 독트린은, 한편으로는 초국적 자본을 보호하는 현실적 대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내건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같은 남미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동맹의 구축이다. 2010년 2월 멕시코에서 개최된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연합 정상회담’(la Cumbre de la Unidad de Am?rica Latina y el Caribe)에 참석한 33개국 정상들(여기에는 쿠바의 라울 가스뜨로로 포함된다)은 2011년 미국과 캐나다를 배제하고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기구’(la Organizaci?n de Estados Latinoamericanos y Caribe?os)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 새로운 조직은 미국이 주도했던 ‘미주국가기구’(la Organizaci?n de los Estados Americanos)와는 확연히 다른 기구가 될 것이다. 회담이 끝난 후 깔데론 대통령은 이 기구가 미주국가기구의 노선을 충실히 계승할 것이라는 개인적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는 아마도 오산일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로 확장하려던 미국의 의도는 2009년 4월 열린 제5차 미주국가기구 정상회담에서 이미 실패로 끝났다. 또한 2008년 ‘남미국가연합’(UNASUR)이 출범함으로써 남미국가들의 집단방위체제가 구축되었고 ‘남미공동은행’(Banco del Sur)도 설립되어 경제적 독립도 시도하고 있다. 국제정세와 맞물려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약 전쟁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과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2010.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