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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지진과 콜레라 그리고 종교갈등

2011-03-03l 조회수 4463

아이티 지진과 콜레라 그리고 종교갈등

조영현(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2010년 1월 12일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은 25만 명 이상의 사상자와 수백만의 이재민을 낳았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탐욕스런 침탈과 20세기 미국의 군사 개입과 점령이 오늘날 비운의 아이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환경재앙은 21세기에도 아이티는 계속 저주받은 섬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언을 확인시켜주는 표지가 되었다. 지진 직후 보건 분야 전문가들은 처참한 지진으로 재앙이 끝나길 바라는 것은 단지 소망일뿐이며, 재앙의 후폭풍이 아이티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같은 해 10월 중순 경 아이티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급속히 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현지 언론보도에 의하면 성탄절까지 12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2600명이 사망했다. 전염병의 피해는 주로 지진이 발생한 지역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콜레라의 창궐은 지진 피해로 실의에 빠진 주민들에게 두려움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보건 관련 전문가들은 이번 콜레라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면 감염자가 60만 명, 혹은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콜레라에 대한 두려움은 동시에 종교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남부 해안도시 제레미에서는 부두교 사제들이 사악한 마술을 이용해 콜레라를 퍼트린다는 이유로  마녀사냥 식 처형을 당했다. 여사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중들은 부두교 의식을 행하는 사제들을 교수형이나 화형에 처했다. 부두교에 반감을 가진 이들은 전통 칼인 마체테(machete)를 가지고 부두교 지도자들을 살해했다. 중부지역의 플라투에서도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12월 초에 12명의 부두교 신봉자들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고, 성탄절까지 전국적으로 총 45명이 살해되었다.

부두교와 그 종교의식이 콜레라 확산의 원흉으로 몰리고 있다. 지방정부가 나서 콜레라와 부두교 의식이 무관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부두교 추종자들에 대한 종교박해를 막지는 못했다. 부두교 지도자들은 살인에 가담한 사람들과 책임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은 경찰과 정부 공무원들을 비난했다.

종교 갈등은 이미 지난 1월 대지진 참사 직후 재난을 선교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여러 종교단체의 움직임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 환경재앙 이후 전 세계적인 원조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인력과 생필품 지원의 상당부분이 종교단체에 맡겨져 있었다. 식량과 구호물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갈등이 드러났다. 기독교 단체들은 구호 식량과 의약품을 부두교 신도들에게 나눠주지 않아 개종을 유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구호물품을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많은 부두교 신도들이 서둘러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러나 기독교 단체들은 모든 지진 피해자들에게 물품을 나누어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부두교 추종자들이 사악한 길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로 인도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아이티 전문가들은 재난을 종교의 세력 확장과 선교로 이용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종교 갈등이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지진 참사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부두교 종교의식에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나타나 종교의식을 방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곳으로 돌을 던지거나 그 주변에서 소리를 지르며 의식을 방해했다. 심한 경우엔 부두교 제단이나 의식 장소를 파괴하고 종교 상징물들에 소변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자 부두교 최고 지도자 막스 보보리(Max Beauvori)는 기독교인들이 공개적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국가적 재난 사태 앞에서 이런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지진으로 인한 대참사 이후 아이티에서는 환경재앙을 야기한 것이 부두교 때문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부두교 부적 때문에 목숨을 구했다는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피에르 다비드(Pierre David) 목사처럼 부두교 때문에 대재앙이 닥쳤다고 설교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지진으로 인한 참사가 사악한 신을 믿는 아이티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식민시대 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1791년 8월 14일 부크만(Boukman) 이라는 흑인 부두교 사제가 아이티 사람들 앞에서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그 피로 섬의 수호신과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는 프랑스로부터 자유를 얻게 해주면 200년 동안 섬의 신령을 숭배하고 그에게 봉사할 것 이란 내용이 포함되었다. 며칠 후 이 의식을 시발점으로 대규모 흑인 봉기가 일어났고, 13년 후인 1804년 아이티 흑인들은 중남미 최초로 독립을 쟁취했다. 역사상 첫 흑인 공화국이 탄생한 것이다. 이 부두교 협정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티의 수도엔 돼지 모양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2005년 부두교 추종자은 다시 200년간 계약을 연장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도들은 부두교 때문에 아이티는 ‘사악한 신에게 헌정된 국가’가 되었다고 한탄했다. 기독교도들은 미신적 요소를 제거하고 아이티를 깨끗하게 정화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부두교를 미신과 우상의 종교로 파악하는 한 앞으로도 두 세력 간에 충돌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대지진과 그 재앙 후에 닥친 전염병, 그에 따른 사회적 불안, 그리고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 때문에 아이티는 혼란에 빠졌다. 게다가 최근에 치러진 대선과 부정선거 의혹이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절망에 휩싸인 아이티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믿을 것은 이제 신 뿐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지진이나 콜레라의 창궐의 원인을 종교와 연결시키고, 재난을 선교와 종교 세력 확장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아이티에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다.
<2011.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