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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_200909_온두라스 사태를 통해 본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

2011-03-02l 조회수 2765

11월 2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온두라스가 8월 31일 법에 따라 보장된 90일간의 공식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지난 6월 28일 쿠데타로 체포, 추방된 호세 마누엘 셀라야 로살레스(57) 대통령의 여러 차례 귀국 시도와 현 집권세력의 필사적인 저지가 반복되던 정국이 대선정국으로 전환되고 있는 양상이다. 집권세력은 4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을 예정대로 치름으로써 비판자들의 시선을 대선으로 돌리고, 자신들이 헌정질서의 파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합법적으로 실질적인 정권창출을 성취하는 등 여러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사실 현 집권세력은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나 볼리비아의 모랄레스처럼 개헌을 시도한 셀라야 대통령이기에, 재집권에 눈이 먼 인물로 그를 몰아붙이면 쿠데타가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확보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우선 미국이 그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온두라스 쿠데타 직후 차베스는 막후에 미국이 있다고 펄펄 뛰었다. 그러나 쿠데타 이틀 뒤인 6월 30일에 오바마는 이를 강력히 규탄했다. 과거 냉전체제 하에서 노골적으로 라틴아메리카 군부를 지원한 전력이 있는 미국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쿠데타를 규탄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오바마라는 찬사가 뒤를 이었다. 비교적 최근인 9월 3일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워싱턴에서 셀라야를 접견하면서 그의 복귀를 위해 최대한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온두라스에 등을 돌렸다. 6월 30일부터 7월 초에 걸쳐 쿠데타 세력을 규탄하는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성명이 줄을 이었고, 대사 소환을 단행한 국가들이 생기고, 유엔총회가 쿠데타 무효를 결의하고, 미주개발은행이 온두라스 신규대출을 중단하였다. 급기야 7월 5일 미주기구는 온두라스의 회원국 지위를 정지시켰다. 이 결정은 1962년 미국의 주도 하에 쿠바를 축출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온두라스 현 집권세력은 정말로 숨이 턱턱 막혔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힘없는 나라 온두라스가 국제사회의 압력을 그럭저럭 헤쳐 나가고 있고, 대선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면서 어느 정도 국면 전환에 성공했다는 관측이다. 그렇다고 온두라스의 내부 결속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쿠데타 직후부터 셀라야 지지자들의 강력한 저항이 강경진압과 유혈사태로 이어지면서 이미 씻을 수 없는 증오와 반목의 씨앗이 뿌려진 상태이니 말이다. 온두라스의 현 집권세력이 내우외환 속에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결국은 아무도 그들의 숨통을 끊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은 강력한 규탄 성명과 연이은 셀라야 지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대 온두라스 지원의 전면 중단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온두라스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대응에서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가 본질적으로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단을 조심스레 내릴 수 있다. 물론 오바마는 부시 정권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무관심과 일방주의를 일소하고 두 대륙이 상생의 관계를 맺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차베스와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천명했고, 미국 거주 쿠바인의 본국 송금이나 친지 방문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대폭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차베스에 대한 해법을 아직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적극적으로 셀라야를 지지하기는 쉽지 않다. 셀라야 역시 차베스가 조장한 탈 미국적 행보를 걸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구문제위원회(COHA: Council on Hemispheric Affairs) 위원장 래리 번스는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반구문제위원회란 1975년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발족한 비정부기구로 주로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를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분석하고 조망하는 싱크탱크이다. ‘반구’란 서반구, 즉 미주를 가리킨다). 오바마가 주저하는 사이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의 진정한 개선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래리 번스는 오바마가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의 특수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차베스를 파트너로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온두라스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라틴아메리카는 결국 오바마에 대한 신뢰를 거둘 것이다. 오바마에 대한 호감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라틴아메리카의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라틴아메리카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을 미국 자신으로 설정하지 않고 차베스로 설정하는 한 진정한 관계 개선은 요원한 것임을 온두라스 사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참고 사이트 - http://www.coha.org/2009/09/6422/ - http://www.coha.org/2009/07/the-coup-in-honduras - http://www.coha.org/2009/08/oba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