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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할 수 있다” 중남미 흑인들이 깨어난다

2008-06-02l 조회수 3849


기사입력 2008-06-02 04:43 
아프리카계 이유 하나로 ‘2등 시민’ 홀대
오바마 영향…차별 맞서 권리 찾기 ‘작은 변화’

“예.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선거 구호다. 이 구호가 미국 아래에 있는 중남미 흑인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다. ‘라틴 아프리칸’으로 불리는 이들 중 순수 흑인은 중남미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프리카 출신의 조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라틴 아프리칸은 중남미 전체 인구의 25%에 달한다. 그동안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며 이등 시민으로 지내던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시사 주간 뉴스위크는 최신호에서 중남미에 부는 새로운 흑인 권리 운동을 소개했다. 아직까지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여론을 환기시킨 사람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2년 전 아프리카 서부의 감비아 방문 당시 발언으로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스페인이 우리의 어머니라고 한다면, 아프리카는 그보다 훨씬 더 어머니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에게도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발언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준의 발언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미 국가의 지도자들에게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백인과 백인계 혼혈이 사회 전반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 아프리칸들의 권리 운동은 작지만 의미있는 성과들을 보이고 있다. 카리브해 국가들에서는 이미 흑인 대통령이 다수 배출됐다. 상당 기간 흑인 노예들이 정치적 차별에 항거 해 온 결과다. 1억9200만 인구의 절반이 흑인계인 브라질에서는 호아킴 바르보사 대법관이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음악가인 지우베르투 지우 또한 룰라 대통령 1기 시절 브라질 문화부 장관을 5년간 역임한 흑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 여전히 흑인들은 소수인종이다. 정부 통계들을 살펴보면 이들 흑인이 이등 시민이라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 5%가 흑인인 에콰도르에서 이들의 실업률은 14.5%에 이른다. 백인계열을 훨씬 뛰어넘는 것은 물론 원주민 인디언계와 비교해도 2배 이상의 실업률이다. 콜롬비아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브라질, 미국에 이은 세번째로 흑인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전기와 상수도를 이용할 수 있는 흑인의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비흑인의 이용 접근율은 60%다. 콜롬비아의 유아 사망률 또한 흑인이 백인의 3배에 달한다.

전반적으로 라틴 아프리칸들이 자신의 인종과 계급에 관한 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도 문제다. 콜롬비아에서는 2005년 인구 센서스에 처음으로 인종 분류를 답하는 문항이 신설됐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당시 흑인계 콜롬비아인들의 절반만이 자신의 인종을 정확히 표현했다고 전했다. 콜롬비아 문화부의 공무원인 도리스 델 라 호스는 “아프리카계 조상을 둔 많은 사람들이 다소 밝은 피부색을 가진 그들 자녀들에게 자신이 하얗다는 것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은 열악하지만 이들 라틴 아프리칸은 미국 대선을 희망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에콰도르의 에스메랄다스 시장인 에르네스토 에스투피낭은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면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격려와 마음 속의 뿌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투피낭 시장 역시 흑인이다.

<정환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