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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하나의 꿈’…중남미, 한데 뭉쳤다

2008-12-25l 조회수 2832


기사입력 2008-12-17 19:25 

[한겨레] 첫 중남미·카리브 회의

33개국 정상, 미·EU 견제 ‘무게’…갈등 많아 불투명

미국의 영향이 쇠퇴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진출이 본격화되는 중남미와 카리브해 연안의 33개국 정상과 정부 대표가 참석한 제1회 중남미·카리브 정상회의(SLAC)가 브라질 북동부 휴양도시인 코스타도사우이페에서 16~17일 이틀 동안 열렸다.

이번 모임에는 지난 5월 결성한 남미국가연합(우나수르)을 비롯해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등 중남미권 국제기구 소속의 모든 국가들이 참여했다. 정상회의의 주요의제는 지역통합과 경제위기 대응이었지만, 각국 정상은 우선 미국과 유럽을 배제한 채 이 지역 국가들만의 모임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독립한 지 200년이 지났지만 이 지역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는 처음”이라고 개막 연설에서 말했다. 이번 회의는 중남미와 카리브 지역이 200년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데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제 2의 독립선언으로 평가된다.

쿠바의 회의 참가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 영향력의 쇠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에이피>(AP) 통신은 보도했다. 쿠바는 1962년 옛소련과 동맹을 맺은 뒤 미국에 의해 미주기구에서 퇴출됐다. 2년 전 피델 카스트로부터 권력을 승계한 뒤 첫 국외 나들이에 나선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세계의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모델 때문이라며 미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남미 정상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쿠바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중남미 지역의 독립성을 인정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오바마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옭아매놓은 매듭을 풀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룰라는 장광설의 차베스가 연설을 짧게 하지 않으면 신발을 던지겠다고 농담을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상들은 시종 미국을 공격하는 데 뜻을 같이 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회의 기간 내내 미국은 샌드백이 됐다”고 보도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리오단 로에트 남미연구소장은 “중국과의 교역이 증대하고 지난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남미 지도자들과 회동을 가진 사실은 미국이 이 지역 현안에서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배제라는 공동의 이해를 떠나 지역통합과 경제위기 대응 등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국가 간 갈등과 긴장이 너무 크다고 <뉴욕 타임스>는 분석했다. 볼리비아의 경우,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대립하는 오스카르 오르티츠 상원의장이 남미국가연합에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최근의 집단 사망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남미국가연합은 이 사건을 학살로 규정했다. 에콰도로도 브라질 건설회사의 경영인을 추방하고, 외채상환 거부 의사까지 밝혀 브라질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중남미·카리브 정상회의의 한계는 이번 회기에 처리하기로 한 남미국가연합 사무총장 선출 무산에서도 드러난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현재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타바레 바스케스 우루과이 대통령은 결사 반대의 뜻을 보이고 있다. 이번 회의는 또 지역 내 관세 철폐 합의에도 실패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