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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국제> 중남미 정치지형 '꿈틀'

2009-12-22l 조회수 2967


기사입력 2009-12-21 08:00 | 최종수정 2009-12-21 09:04

'좌우균형' 움직임..외교갈등 요인 산재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올해 중남미 지역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통해 우파가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면서 지난 수년간 절대적 대세를 이루던 좌파가 다소 힘을 잃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은 힘에 부치는 모습이지만 대륙 전체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정치지형에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군부 쿠데타로 초래된 온두라스 정치위기와 미국과 콜롬비아의 군사협정 체결, 중남미와 이란의 전략적 접근 등으로 인해 미국-중남미 관계 개선 노력이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물론 일부 문제는 중남미 지역을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좌파 퇴조, 우파 부활?" = 4~5년 전 실시된 중남미 지역 대선 및 총선은 우파의 몰락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로 좌파가 대륙을 휩쓰는 결과를 낳았었다. 우파 진영에서 생존자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이 거의 유일했다.
좌파 강세 현상은 적어도 올해 초까지 계속됐다.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개헌안이 지난 1월 말 압도적인 찬성률로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볼리비아 사회를 뿌리부터 개혁하겠다는 모랄레스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이 국민들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후 원주민과 코카 재배농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보수우파 야권의 공세에 정면대응하면서 국정을 주도한 끝에 12월6일 대선에서 63%를 넘는 득표율로 승리해 2014년까지 임기를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또 베네수엘라에서는 2월15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개헌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지난 1998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장기집권 기반을 갖추게 됐다. 개헌안 통과로 야권을 사실상 완전히 무력화시킨 차베스 대통령은 이후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건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어 3월15일에는 엘살바도르에서 대선이 실시돼 좌파 정당인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FMLN)'의 마우리시오 푸네스 후보가 승리하면서 중미 지역의 좌파 교두보를 강화했다.
4월26일 치러진 에콰도르 대선에서도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50%를 넘는 득표율로 재선돼 차베스-모랄레스-코레아로 이어지는 '남미 좌파 3각축'의 건재를 확인시켰다.
그러나 5월부터는 좌파 일색이던 중남미 지역의 정치 판도에 서서히 변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월 3일 실시된 파나마 대선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유통 재벌 리카르도 마르티넬리 후보가 좌파 집권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해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이어 6월28일 열린 아르헨티나 총선에서 중도좌파 집권세력이 참패한 것은 우파 부활의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아르헨티나 정치권과 언론은 벌써 오는 2011년 말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로부터 5개월 후인 11월29일 동시에 실시된 온두라스와 우루과이 대선에서는 우파 후보와 좌파 후보가 각각 승리하면서 1승씩 나눠가졌다.
12월13일 칠레 대선 1차 투표에서는 기업인 출신의 우파 야당 후보가 집권 중도좌파연합 후보를 앞섰다. 칠레 대선의 최종 결과는 내년 1월 17일 결선투표에서 나올 예정이지만 우파 야당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면서 20년만의 정권교체가 예상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의 선거정국은 코스타리카 총선(2월 7일), 콜롬비아 총선(3월 14일) 및 대선(5월 30일) 등을 거쳐 역내 최대국 브라질 대선(10월 말)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정치 전문가들은 올해와 내년 선거를 통해 우파가 상당한 정도의 세를 얻으면서 전체적으로 좌파의 입김이 약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함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쿠바, 니카라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중남미 각국 정당들이 경제성장과 빈곤 및 기아 퇴치라는 당면과제를 위해 이념을 유보하는 중도실용 성향을 나타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외교갈등 요인 산재..對美관계 난항 = 중남미 지역에서는 올해 유난히 많은 외교 난제들이 등장했으며, 대부분 미국과 관련되면서 미국-중남미 관계 개선 노력에 무거운 짐을 안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차베스-카스트로-모랄레스 회동 (AP=연합뉴스)12월 14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ALBA 정상회담 폐막식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왼쪽)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무언가를 지적하고 있다.
올해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중남미 국가들은 일제히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기대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으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집권 8년간 느껴온 소외감이 씻겨나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중남미 관계 개선을 위한 필수조건처럼 여겨졌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 해제 문제는 오바마 정부 초기 쿠바계 미국인의 여행 자유화 이후 추가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콜롬비아 내 7개 미군기지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미국-콜롬비아 군사협정 체결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강경좌파 정권 국가들은 물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등 중도좌파 정권 국가들로부터도 "미국이 여전히 중남미 지역에 대한 간섭.개입 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6월 말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조성된 온두라스 정치위기 해소 방안에 관해서도 미국과 브라질이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다.
좌파 성향의 마누엘 셀라야 전 온두라스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에 의해 쫓겨나고 11월29일 대선을 통해 우파 후보가 승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으나 미국이 대선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브라질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콜롬비아, 파나마, 코스타리카 등 친미(親美) 성향 국가들이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고, 다른 국가들은 브라질 입장에 서면서 온두라스 문제가 중남미 지역을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반미(反美) 노선의 선봉에 서있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와 미국 간의 관계 개선 문제도 소문만 무성하게 떠돌 뿐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여기에 지난 달 이루어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방문은 미국-중남미 관계를 더욱 껄끄럽게 만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중남미 국가들에 이란과의 관계 강화 시도를 재고할 것을 촉구하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는 "중남미-이란 접근에 간섭하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브라질 정부는 "미국-중남미 관계가 개선되기는커녕 부시 정부 때보다 오히려 악화된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남미 다른 국가들도 "미국이 여전히 중남미를 자신들의 '안마당' 정도로 여기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반응들은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신뢰감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도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