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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 처음 선언한 브라질, G20에는 왜 안올까?

2010-10-26l 조회수 2723



지난 2006년 3월 취임한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부 장관은 브라질의 고속성장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오랫동안 몸담아 온 만테가 장관은 93년부터 2002년 까지 루이 이나시우 룰라 당시 노동자당 대표의 경제보좌관을 지냈으며, 브라질 국가계획부 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을 지냈다.

로이터 통신은 브라질이 경제위기 와중에도 올해 1분기 14년만에 최대폭인 9%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만테가 장관의 정책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만테가 장관의 리더쉽이 브라질을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중국, 인도, 러시아와 함께 떠오르는 G20강국으로 자리매김 시켰다는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만테가 장관은 최근 유행어가 된 '환율 전쟁'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G20국가 관료다. 물론 그전부터 경제학자들이나 언론들은 '환율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가능성을 우려해 왔지만 지난 9월 파이낸셜타임스가 만테가 장관이 "세계 모든 정부가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화폐의 가치를 낮추려는 세계 환율전쟁의 한가운데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뒤에는 각국의 관료들도 이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만테가 장관이 환율전쟁을 공식 선언한 까닭은 달러화에 대해 자국 화폐인 헤알(real)화의 가치가 올해 초보다 30%넘게 상승(헤알화 평가절상)했고, 7월 이후에만 12%나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브라질의 경상수지 적자는 4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6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로 달러화가 약세인 가운데 수출감소를 우려한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환율에 개입하자 브라질 헤알화의 환율이 급속히 떨어져 브라질 경제를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제 만테가 장관의 '환율전쟁' 발언 일주일 전인 9월 15일, 일본은 엔화 가치가 상승해 수출에 타격이 예상되자 사상최대 규모인 2조엔을 풀어 달러를 사들여 엔화 가치를 하룻만에 3% 넘게 떨어뜨렸다. 한국, 대만,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콜롬비아도 외환시장에 구두 혹은 실제로 개입해 자국 환율을 방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만테가 장관은 '환율 전쟁' 발언을 통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

실제 만테가 장관은 이달 들어 지난 5일 금융거래세를 2%에서 4%로 올렸고, 2주 가량이 흐른 지난 18일에는 투기성 단기자본에 부과하는 금융거래세를 6%로 인상했다. 쉽게 말해 브라질 레알화의 차익을 노리고 들어오는 달러화에 대해 세금을 3배로 올려 유입을 막는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환율전쟁'의 포문을 공식적으로 연 만테가 장관은 22일부터 경주에서 열리는 G20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경주 회의가 11월 G20정상회의에서 합의될 내용들을 결정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만테가 장관의 불참은 G20회의에서 환율 문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즉, 브라질 경제에 타격이 된다면 자국 통화를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하는데, 선진국들의 뜻대로 '환율을 시장에 맡기자'는 식의 결과가 나올 게 뻔한 G20 논의의 장에 안 가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특히 브라질은 미국이 자국의 수출을 위해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면서 신흥국들 통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데 대해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 경제 자체에 있다고 짚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21일 "헤알화가 달러에 대해 과다 평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조치라도 취할 것"이라면서 "문제가 브라질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 세계 모든 (주요) 통화 가치가 달러에 대해 (일제히) 상승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경제회생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1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G20정상회의에서 환율 문제와 관련해 합의가 난망하다며 이를 간파한 브라질, 인도, 터키 등 신흥국들이 G20에 대한 "싫증"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과거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협상이 미국과 유럽의 독자행동으로 10년 가까이 공전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면서, G20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독자적 행동으로 도하라운드와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