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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좌파정부 득세>② 노선은 실용·중도

2011-06-17l 조회수 2730



기사입력 2011-06-15 06:31 | 최종수정 2011-06-15 15:07





'볼리바르 혁명' 영향력 위축..시장친화주의가 대세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페루 대선에서 좌파 후보의 승리로 남미대륙이 '붉은 옷'을 입게 됐다."

지난 5일 페루 대선에서 오얀타 우말라가 승리하자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모랄레스의 말처럼 우말라의 대선 승리는 남미에서 좌파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남미대륙 12개국 가운데 10개국에서 좌파 정권이 출현하는 보기 드문 상황을 낳은 것이다.

남미 12개국 중 우파 정권으로 분류되는 것은 칠레와 콜롬비아뿐이다. 그러나 칠레와 콜롬비아도 최근 좌파적 정책을 과감하게 채택하면서 왼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기업인 출신의 우파 정치인인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구리 등 광산 개발에 부과하는 세금을 인상하고 6개월 출산휴가를 시행하기로 했다. 피녜라의 이런 행보를 두고 '우파에서 좌파로의 여행'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피녜라 정부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정권(1973~1990년)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20년간 집권한 중도좌파 정당연합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 정권의 연장"이라는 평가까지 하고 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전임자인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과 달리 좌파 정권에 적극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베의 앙숙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도 손을 잡았다. 산토스는 과거 좌-우파 정치세력의 무장 충돌로 피해를 본 좌파 인사들에 대한 보상을 추진하는가 하면 우파 민병대에 의해 몰수된 토지를 농민들에게 반환하겠다고 약속해 우리베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페루와 함께 그동안 '남미 우파의 보루'로 여겨지던 칠레와 콜롬비아마저 이른바 '좌파 대세론'에 기우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좌파 진영에서도 노선에 따라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과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 마우리시오 푸네스 엘살바도르 대통령 등은 시장친화적 실용 중도좌파로 분류된다. 우말라 당선자도 가세했다.

차베스와 모랄레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등 '볼리바르 혁명'을 통한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부르짖는 진영은 강경좌파로 불린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도 크게 보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남미에서는 한동안 강경 좌파가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막대한 석유자원을 앞세운 베네수엘라 경제가 다른 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성장 정체와 물가 상승이라는 위기를 겪으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오일머니로 남미 빈곤국을 지원하며 쌓아온 차베스의 영향력도 급속도로 위축됐다.

브라질리아 연방대학(UnB)의 피오 페나 필료 교수(국제관계학)는 "차베스는 이제 남미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못된다"면서 시장친화주의를 택한 중도좌파가 베네수엘라의 위기와 겹치면서 갈수록 입지를 넓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대학 라틴아메리카연구센터의 파트리시오 나비아 교수는 남미 좌파의 두 축으로 인식됐던 룰라와 차베스 간에 이미 우열이 갈렸다고 표현했다. 차베스의 독단이 민주주의 작동을 막았고, 이것이 강경좌파 진영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모랄레스조차도 최근 들어 차베스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모랄레스는 자국의 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베네수엘라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차베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남미는 확실히 '볼리바르 혁명'이나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 같은 투쟁적 이념보다는 시장친화적 중도좌파를 향해 가고 있고, 여기에는 브라질의 정치·경제·사회적 성공이 뒷받침되고 있다.

연합뉴스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