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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넘긴 칠레 교육 분쟁…"정부 못 믿는다"

2012-01-10l 조회수 2135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칠레 교육 시위대(자료)
(AP=연합뉴스) 학생들의 교육개혁 요구를 지지해 칠레 노동계가 총파업에 나선 지 이틀째인 25일(현지시각)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시위 행렬에서 한 시위자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을 희화화한 얼굴 사진을 들고 있다.   A protester holds up an image mocking Chile's President Sebastian Pineda as demonstrators march toward La Moneda presidential palace on the second day of a national strike in Santiago, Chile, Thursday Aug. 25, 2011. Chileans marched peacefully Thursday, demanding profound changes in the country's heavily centralized and privatized form of government. Union members, students, government workers and Chile's center-left opposition parties joined the nationwide two-day strike. (AP Photo/Victor R. Caivano)

7개월 전국 집회 성과 없어…학생단체 '투쟁 재개'

보수ㆍ진보따라 해결책도 딴판…갈등 고착화 우려

(산티아고=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6일(현지시각) 오후 칠레 산티아고 중심가의 명문 공립인 '호세 빅토리노 라스타리아' 고교.

교문에 쌓인 책ㆍ걸상에 먼지가 수북했다. 학교는 지난해 6월부터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에게 점거된 상태. 지금도 50여명이 교정 안에서 농성 중이다.

학생들은 행인들에게 플라스틱 컵을 내밀고 '투쟁 기금'을 부탁했다. 돈을 세던 펠리페 부헤스(18)군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 올해는 수업은 듣겠지만 싸움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대다수 공립학교를 폐쇄하고 사상 최대의 전국 집회를 일으킨 칠레 공교육 분쟁이 해를 넘겨도 풀릴 기미가 없다. 집회 지도부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며 신학기인 3월 대규모 집회를 재개할 예정이다.

해결책은 합의가 쉽지 않다. 계층 격차가 큰 현재의 교육을 바꿀 방안이 보수ㆍ진보 진영에 따라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태가 장기화될 위험성이 크다.

◇ 더 급진적인 지도부 = 교육 집회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국립 칠레대 총학생회(FECH)는 지난달 회장 선거에서 사령탑을 바꿨다.

미모와 언변으로 '교육 투쟁의 여신(女神)'으로 꼽혔던 전(前) 회장 카밀라 바예호가 재선에 실패하고 더 급진적 인 가브리엘 보릭이 선출됐다.

바예호는 집회가 시작된 지난해 5월부터 7개월이 지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문책성' 투표가 이뤄졌다는 풀이다.

새 지도부의 기조는 강경하다. 기존 정당과의 협업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각계 좌파 세력을 결집해 칠레의 정치 판도를 대폭 바꾼다는 구상이다.

칠레공산당 등 야당과 대화하며 교육 문제 해결에 치중했던 바예호의 온건 성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보릭은 최근 일간지 '라 시우다다노(La Ciudadano)'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교육 투쟁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2년에도 민중의 집단행동(movilizacion)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칠레 정부는 갈등을 풀 방안이 마땅치 않다.

집회 강경 진압을 주도하던 펠리페 불네스 전 교육장관이 작년 연말 '개인 사정'으로 사임하자,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 헤럴드 바이어를 후임자로 뽑아 오히려 빈축을 샀다.

집회 주최 측의 주요 요구사항인 '학교의 영리 활동 금지'에 반대 견해가 분명한 바이어가 학생들과 원만하게 협상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칠레대 산하 라디오 방송국의 뉴스 에디터 에두아르도 오레야나씨는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학자인 만큼, 행정부 지시에 따라 보고서나 만드는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론도 많다"고 설명했다.

◇ "논의 평행선…고착화 우려" = 칠레는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시장ㆍ경쟁 중심의 교육제도를 채택했다.

1990년 민주화 이후인 지금도 체제는 그대로다. 학생 유치 실적에 따라 학교 지원금을 나누고 중앙정부 규제가 거의 없다. 서민 공교육이 무너졌고 비싼 사립 고교가 명문대 진학을 독식한다.

학교 영리 활동이 용인되며 비싼 학비에 학생 수를 마구 늘리는 '돈벌이형' 대학이 퍼져 고등교육 부실도 심각하다.

문제의 뿌리가 깊은 만큼 처방은 이념에 따라 딴판이다. 진보 진영은 교육의 공공성을 찾는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초ㆍ중등학교를 중앙 정부가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무상교육과 학교 비영리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를 비롯한 보수층은 교육을 공공화하면 정부 지출이 급증하고 민간 교육 자본이 이탈한다며 펄쩍 뛴다.

계층별 격차를 장학금과 대출 혜택으로 줄이고 수업 부실화를 막는 기관을 신설하는 보완책으로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학생의 대화는 결렬을 거듭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무상 교육과 관련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정치 공방과 시위가 반복되며 대중에 냉소주의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현지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서는 '실질적인 정책 논의로 고착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티아고의 한 사범대 재학생인 알레한드라 코에사(29ㆍ여)씨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다들 공감하지만, 학생들이 이상론만 고집하다 초점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ta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01/07 02:1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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