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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와 포클랜드, 정권의 만병통치약

2012-09-25l 조회수 3984

말비나스 제도(포클랜드)

얼마 전 열린 런던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의 올림픽 홍보용 광고가 영국 내 논란을 일으켰다. 광고가 자극적이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광고가 포클랜드라는 섬을 두고 벌어지는 아르헨티나판 독도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말비나스(포클랜드의 아르헨티나 이름)의 전사자와 참전용사들을 기리며라는 제목부터 포클랜드가 영국 땅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땅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광고는 아르헨티나 하키 국가대표팀 주장인 페르난도 질버버그가 영국령 포클랜드 자치구의 수도인 포트스탠리 거리를 멋지게 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페르난도는 이어 배가 정박해 있는 바닷가를 지나 아르헨티나 전사자 추모비가 있는 언덕을 향해 달린다. 그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흐르고, 전사자 추모 언덕 위로는 우리는 영국 흙 위에서 경쟁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흙 위에서 훈련하고 있다라는 자막이 흘러나온다. 영국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제작된 이 광고에 영국 정부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는 일본 도쿄에서 우리 정부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광고한 것과 비슷한 사태라 할 수 있다.

 

영국은 198242일부터 614일까지 74일간 포클랜드 전쟁을 벌였고, 전쟁에서 승리해 포클랜드를 차지했다. 이 전쟁에서 영국군 255, 아르헨티나군 649, 민간인 3명이 숨졌다. 지난 42일은 포클랜드 전쟁을 벌인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로부터 480떨어져 있고, 영국으로부터는 14000나 떨어진 외딴섬이다. 거리로 보면 아르헨티나와 월등하게 가깝다. 그 옛날 불모지에다 쓸모없는 무인도에 불과했던 이 하찮은 섬이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 최고 쟁점으로 등장한 것은 포클랜드 전쟁 때부터다.

 

이 땅을 처음 정복한 쪽은 영국인이었다. 영국 해군이 1690년 처음 이곳에 상륙했다. 그래서 섬 이름도 당시 영국 국회의원이었던 포클랜드 자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1700년대 영국, 프랑스, 스페인이 각각 주민을 정착시켰으나 1811년 마지막 주민이 떠난 이후 포클랜드는 줄곧 무인도였다. 그러다 1933년에 영국이 다시 목축업을 하는 주민들을 정착시키면서 사람이 사는 섬이 되었다.

 

1982년 무력 점령한 이유

 

1982년 당시 레오폴도 갈티에리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는 갑자기 이 포클랜드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포클랜드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내부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군사정부의 인권 탄압과 경제 사정 악화 등으로 국민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이렇게 국내가 뒤숭숭해지자 군사정부가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도 다분했다. 당시 극심하게 대립하던 여야도 포클랜드는 우리 땅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만은 한목소리를 냈다.

 

사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던 1816년에는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통치했다. 그러나 당시 포클랜드에 살던 이들은 영국인이었다. 아르헨티나가 무력으로 포클랜드를 점령하자 당시 영국 수상이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벌인 전쟁이 바로 포클랜드 전쟁이다. 이 전쟁은 영국이 승리하며 끝났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포클랜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제적 갈등을 빚고 있다.

                   

AP Photo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왼쪽)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오른쪽).

영국이 포클랜드 영유권을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주민의 자치권이다. 현재 거주하는 주민 3000여 명 중에는 아르헨티나가 아닌 영국민이기를 원하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영국은 언어·문화·역사 면에서 주민들이 영국인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영국 정부는 포클랜드 영유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월 방공 구축함 HMS 톤트리스를 포클랜드로 출항시켰다.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 등 대공 방어 능력이 탁월한 45급 방공 구축함인 HMS 톤트리스의 포클랜드 섬 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좌우파 가릴 것 없이 영국 비난

 

이에 아르헨티나도 외교전에 돌입했다. 현 아르헨티나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지난 222~23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정상회의에서 중남미 각국 정상들에게 포클랜드 섬 영유권 회복을 위한 아르헨티나 지지를 촉구했다.

 

회담에 참석한 32개국 중남미·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은 영유권 분쟁에서 포클랜드의 영유권은 아르헨티나에 있다라며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과거 홍콩을 영국 정부로부터 반환받은 경험이 있는 중국도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영유권을 지지했다. 아르헨티나 국내에서도 포클랜드는 우리 땅이라는 대규모 반영(反英)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4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모인 시위대 수천 명은 영국 대사관 앞에서 포클랜드를 점령한 영국은 해적이다라고 비난했다. 시위에 참가한 극좌파 단체 케브라초 회원들은 영국 국기와 윌리엄 왕자 모형을 불태웠다. 이들은 좌우파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로 영국 정부를 비난했다.

 

Reuter=Newsis

1982521일 포클랜드 전쟁에서 죽은 아르헨티나 병사들의 철모가 나뒹굴고 있다.

정당 간 혹은 여야 간 대립이 일상화된 아르헨티나에서 이렇게 일치된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 나라였다. 당시 경제력은 프랑스나 독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웬만한 유럽 국가보다 잘살았다.

 

우리가 아는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에서 이탈리아인 주인공의 엄마가 아들을 떼놓고 돈 벌러 떠났던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였다. 그러나 정치 불안정과 과도한 포퓰리즘으로 국가 살림이 날로 기울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사상 유례없는 극단적인 경제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무분별하게 화폐를 찍어 급한 사태를 막으려 했고, 결국 이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지금은 급한 불을 끈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대다수 아르헨티나 국민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정치권은 책임 소재를 따지며 공방을 벌인다. 이렇게 나라가 분열된 상황에서 포클랜드가 전 국민을 하나로 만든 셈이다.

 

지난 612CNN 방송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흔들리는 경제 상황과 정권 반대 여론을 해소하기 위해 포클랜드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 재선 대통령인 페르난데스가 포클랜드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당장 직면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사회적 갈등도 한동안 묻고 갈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최근 포클랜드 영유권을 놓고 외교적 행보를 집중하고 있다. 그녀는 영국이 14000나 떨어진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포클랜드 섬은 아르헨티나 대륙붕에 있는 우리 영토다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어 양국 정부의 협상을 권고한 1965년 유엔 결의안을 언급하면서 영국 정부가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한 상태다.

 

아르헨티나의 이 같은 도발에 영국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침공한 것이 잘못이다. 이 때문에 포클랜드 주민들이 자유와 삶을 빼앗겼다라고 반박했다. 영유권 수호 의지도 거듭 밝혔다. 영국도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제위기로 고전 중이다. 그런 만큼 영토 문제를 들고 나와 손해볼 것 없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곧 양국 정부 공히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함으로써 경제위기로 인한 국내 불안을 잠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제3자 처지에서는 포클랜드가 영국 땅인지 아르헨티나 땅인지 결정내리기가 쉽지 않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양국 영유권 다툼에 대한 미국의 중립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라고 밝혔다. ⓒ 시사IN(http://www.sisainliv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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