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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만에 대서양 노예무역 법의 심판대

2013-07-30l 조회수 5148

ㆍ카리브해 14개국, 영국·프랑스·네덜란드 상대 소송
ㆍ“과거사 아니라 현재에도 빈곤 등 고통… 보상 받아야”

유럽 제국들은 17세기 이래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실어다 ‘신대륙’에 이식했다. 미주 대륙에 옮겨진 흑인 노예들이 설탕과 커피 등을 재배하면 제국들은 이 상품들을 가져다 유럽에 팔았다. 이른바 ‘대서양 삼각무역’의 시대에, 카리브해에 끌려간 아프리카 출신들과 그곳의 원주민들은 서양인들의 노예로 수탈당했다.

설탕을 판 돈으로 서방은 산업화를 일궈냈지만 노예들이 일했던 카리브해 지역은 지금도 굶주리고 있다. 이들에게 식민지배와 노예무역은 과거의 일이 아닌 ‘남겨진 유산(lingering legacy)’이다. 이 작은 섬나라들이 300여년 만에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로 했다.

카리브해 국가들로 구성된 카리브해공동체(카리콤) 14개국이 17~19세기 노예제와 원주민 대량 학살의 과거를 묻기 위해 영국·프랑스·네덜란드 3개국 정부를 상대로 싸움에 나섰다. 초국가적 위원회를 만들어 보상을 받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청산할 ‘유산’에는 노예해방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고질적인 가난과 경제적 정체도 포함된다. 노예의 역사는 아픈 과거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고통으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리콤이 강대국들에 맞설 준비를 해온 지는 10년이 넘었다. 가장 많은 노예가 거주했던 자메이카와 앤티가바부다가 각기 자국 내 보상위원회를 구성해 준비작업을 했고, 이달 초 회원국 대표들이 트리니다드토바고에 모여 힘을 합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주로 지배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를 상대로 정했다. 영국은 카리브해 여러 섬들에 노예를 이리저리 이식했다. 프랑스는 생도밍그(현재의 아이티)를 차지하고 영국과 식민지 경쟁을 벌였다. 네덜란드는 남미 북동쪽 끝의 수리남을 식민지로 삼았다.

카리브 국가들은 영국의 법률회사 ‘리데이’를 법적 대리인으로 선정했다. 1950~1960년대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에서 케냐인들이 ‘마우마우 봉기’라 불리는 봉기를 일으켰다가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최근 영국 정부는 케냐 피해자들에게 2000만파운드(약 340억원)를 배상해주기로 합의했는데, 이 협상의 중재역을 맡은 것이 리데이다. 리데이의 마틴 데이 변호사는 영·프·네덜란드 3국과 카리브 국가들 간의 협상도 마우마우 합의모델을 따르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를 고용한 것은 진정으로 (서방과) 맞부딪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메이카 보상위원회를 이끄는 베레네 세퍼트는 “영국은 1834년 카리브 식민지들에 2000만파운드 지불을 약속했고 이는 현재 2000억파운드의 가치”라며 “우리 선조들은 자유는 얻었지만 ‘스스로 일어서라’는 말 이외에는 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과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영국의 자메이카 고등판무관 데이비드 피톤은 “마우마우 방식을 선례로 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입력 : 2013-07-29 23:17:51수정 : 2013-07-29 23: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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