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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희생' 칠레 저항가수 유족 美법원에 소송

2013-09-08l 조회수 2364

1973년 사망한 칠레 '국민 저항가수' 빅토르 하라

플로리다 거주 칠레 軍인사 상대 40년만에 처벌 요구

(뉴욕=연합뉴스) 이강원 특파원 = 칠레의 피노체트 군부 독재 정권의 탄압으로 사망한 국민 저항가수 빅토르 하라의 유족들이 사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고 6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탄압에 희생된 칠레 인사들과 가족들이 맺힌 한을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빅토르 하라의 부인 조앤 하라 등 유족들이 소송을 낸 곳은 미국 플로리다주다. 독재 정권에 의한 학살 사건 관련자 가운데 한 사람인 페드로 바리엔토스가 1990년대 초부터 플로리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칠레 사법부는 학살 사건의 용의자 8명 가운데 일부를 구속 기소하고, 바리엔토스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에 인도요청서를 보낸 상태다. 사건 관련자들은 주로 피노체트 정권을 지탱한 군 출신 인사들로,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특히 칠레 사법부의 인도요청에도 바리엔토스가 여전히 자유인 신분인데다 그의 미국내 법적 지위를 놓고 논란이 있어 유족들의 소송이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하라 사망사건은 1973년 9월11일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이끈 칠레의 첫 사회주의 정권을 쿠데타로 무너뜨린 피노체트 정권이 집권 초 하라를 칠레 스타디움(현 빅토르 하라 스타디움)에서 고문해 숨지게 한 것을 말한다. 당시 바리엔토스는 하라를 상대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도록 강요,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라가 숨진 뒤에도 바리엔토스는 군인 5명을 시켜 하라에게 수십발의 총을 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라의 몸에는 최소 44발의 총알이 박혀 있는 것이 확인됐다. 기타를 치던 그의 손은 짓이겨져 있었고 두개골은 깨져 있었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피노체트 정권의 대표적인 학살 사건으로 거론됐다. 무용가 출신인 조앤 하라는 당시 군부에 저항했던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며 증거를 모으고 증언을 확보했다. 올해 초 칠레 사법부의 조치도 조앤 하라의 노력 덕분이다. 피노체트 독재 시절 1973년에서 1990년 사이 하라 외에 인권탄압 피해자는 4만여명, 사망·실종자는 3천225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칠레에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 피노체트를 인권탄압과 부정축재 등 혐의로 고소·고발한 사례가 잇따랐으나 2006년 12월 그가 91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실제로 처벌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gija007@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07 05:1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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