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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특파원 빗장 푼 아바나를 가다] 미국이 온다 … 과일 파는 소년, 80세 할머니도 “무이 비엔”

2015-08-16l 조회수 1894

오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성조기가 내걸리는 쿠바 주재 미국대사관 재개설식을 앞둔 수도 아바나는 기대에 차 있었다. 10일(현지시간) 아바나 중심가에 자리한 프레테르니다 공원. 이곳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가져온 흙을 모아놓아 중남미의 연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있는 곳이다. 공원의 나무 그늘에서 만난 50대 남성 안토니오는 “아메리카 노르테(북미)건, 아메리카 센트랄(중미)이건, 아메리카 수르(남미)건 모두 다 같은 아메리카”라며 “진작 됐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미국대사관 재개설에 관한 질문에는 “싸울 필요가 뭐가 있었나. 지금까지 싸운 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안토니오와 대화를 나누던 50대 남성 올란도는 “케리(존 케리 미 국무장관)가 재개설식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너무 궁금하다”며 “그날은 꼭 TV로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뒤로 도로 한쪽에 인력거가 달리고 수십 년 된 낡은 차들이 오가는 아바나 거리는 쿠바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날 아바나 거리엔 한글로 ‘삼성역’ ‘사당동’이 쓰여 있는 낡은 8431번 버스가 페인트가 벗겨진 채 달리고 있었다. 대우자동차 티코도 눈에 띄었다. 1961년 미국과 국교가 단절된 후 독자 생존을 주장하며 비동맹의 맹주국 중 하나로 남았던 쿠바. 미국과의 대결은 쿠바의 자존심을 지켜줬지만 그 이면에선 오랜 경제 침체를 겪어야 했다. 이달 초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경제위원회(ECLAC)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62년 미국이 쿠바를 겨냥해 시작한 경제 봉쇄 조치 이후 쿠바가 입은 피해는 1170억 달러(약 137조원)로 추산됐다.


 아바나의 고급 주택가이자 외교관 밀집 거주 지역인 미라마르의 푼티나 몰. 1층은 수퍼마켓과 음식점, 2층은 가정용품, 3층 전자제품 상점들이 모여 있는 아바나 내에선 손꼽히는 대형 쇼핑센터다. 그러나 이곳에선 급하게 찾았던 AA건전지를 구할 수 없었다. 전자제품 코너 진열장엔 상품은 물론이고 건전지도 몇 종류 보이지 않았다. 적기에 상품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한·쿠바교류협회의 정호현 문화교류실장은 “어떤 때는 쌀이 부족하고 어느 때는 소금이 다 떨어져 여기저기 구하러 다니곤 한다”고 귀띔했다. 한 현지 교민은 “신차 가격이 한화로 1억원 정도다. 지금 내가 빌려서 몰고 있는 중국제 지리 승용차는 9만3000㎞를 달렸는데 2500만원가량에 거래가 된다”고 말했다. 

 국교 단절 이후 이어진 미국의 쿠바 고립 정책은 쿠바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이점도 가져왔다. 난개발의 폭풍을 피할 수 있었던 아바나는 60년대 고풍스러운 스페인 양식의 거리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아바나 중심가의 센트랄 아바나는 외벽 페인트가 퇴색해 가는 예스러운 건물들로 시간이 멈춘 듯했다. 거리 한쪽에서 과일을 파는 10대 청소년 에토는 미국대사관 재개설에 관한 질문을 받자 대뜸 “경제가 나아졌으면 좋겠다”며 “다들 그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 옆의 비디오가게에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 아마라(80)는 첫마디부터 “정말 잘됐다. 정말 잘됐다”를 연발했다. 할머니는 “우린 너무 뒤떨어졌는데 이제는 앞으로 나갈 것”이라며 “내가 언제까지 식량배급표를 받아야 하나”라며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신이 건강을 주신다면 내가 앞으로 얼마나 우리나라가 발전할지 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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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201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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