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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_20100816_라울체제의 미래

2011-03-03l 조회수 2876

“제발 쉬지만 말게 해주세요.” 일자리에 퇴출될 위기에 있는 쿠바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라울 카스트로는 최근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을 줄이고 민간 부문의 이니셔티브를 강화하겠다고 피력했다. 라울이 보기에 국가가 고용한 노동력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30만 명이 거품이다. 노동력의 90%를 고용하고 있는 이 사회주의 체제는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일하는 척하고, 국가는 월급을 주는 척한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하지 않는다. 돌봐주는 가부장제 국가가 있기에 그 틀 속에서 안주한다. 
라울 체제가 들어선 지 4년이 되었다. 피델의 병환으로 권좌를 이어받았던 그는 내외에 참신한 변화를 가져올 인물로 한 때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경제적 성과는 물론, 정치적 존재감도 빈약했다. 개혁지향적인 그도 당내 보수파의 견제를 의식하여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했다. 이제껏 실행한 조치란 개인에게 컴퓨터 구매를 허용한 일이나, 세 개 이하의 의자를 지닌 이발소를 민영화한 것뿐이다.
쿠바 경제의 어려움은 익히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에 고난의 행군이 있었다. 이후 경제개혁을 통해 회복의 기회를 얻었지만 서민 생활의 어려움은 여전했다. 관광산업, 니켈 수출 붐, 농업과 서비스 부문의 개혁으로 그나마 경제는 숨통을 틀 수 있었다. 하지만 쿠바에 베네수엘라의 값싼 석유가 공급되자, 경제개혁은 중단되었다. 베네수엘라의 보조금으로 인해 경제를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게 되자, 개혁의 동력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최근 다시 경제상황에 빨간 불이 켜졌다. 쿠바의 경제성장은 2008년에는 4.3%를 기록했지만, 2009년에는 1.4%로 둔화되었고, 올해는 1.9%에 머물 전망이다. 2008년 말에 불어 닥친 세 차례의 허리케인으로 경제의 피해는 막심했다. 2009년 이후 생필품은 만성적으로 부족했고, 서민들은 다시 허리를 조여야만 했다. 라울과 지배 엘리트의 당혹감은 컸다. 그래서 올해 들어 다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로 했다. 정부는 8월에 자기 고용에 대한 금지조항을 대폭 완화하고, 현재 15만 명에 묶여 있는 자영업의 폭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서비스 부문의 협동조합과 소기업도 인정하기로 했다. 심지어 개인여관(파르티쿨라르)이 임금노동력을 고용하는 것도 허용했다. 국영부문의 개혁으로 퇴출자가 늘어난다면, 이를 흡수해줄 민간 부문이 먼저 활성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쿠바 인권 상황에 대한 대외인식을 바꾸기 위해 정치범의 석방과 스페인 망명도 전격적으로 허용했다. 2003년 봄에 “미국과 공모하여” 쿠바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최고 28년 징역형까지 내렸던 75명의 반체제 인사 가운데 52명을 석방하고 네 달 내에 스페인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20 여명이 이미 쿠바를 출국했다. 이러한 조치는 양심수 오를란도 사파타가 85일간의 단식 농성 후에 숨진 뒤에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되면서 가시화되었다. 라울은 국제사회의 인권 비판의 예봉을 꺾고, 동시에 유럽연합의 대 쿠바 압박 정책(공동입장)에 변화를 가져와서 투자유치와 무역활성화에 도움을 얻겠다고 생각한다. 유럽연합은 52명의 송환이 이뤄지면, 공동입장을 1년간 유예하고, 향후 쿠바의 사정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쿠바는 다시 외국자본에 손을 벌리고 있다. 집권층은 베네수엘라의 보조금이 경제개혁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이미 16개의 골프장을 외국자본으로 짓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중단되었던 외국인의 부동산 구매도 다시 허용할 예정이다. 쿠바에서도 중국식 개방과 개혁만이 경제난을 최종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식자층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은 개방하되, 권력은 일당독재로 장악하는 마켓-레닌주의(시장-레닌주의)라면 쿠바 엘리트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경제적 자원의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군부 엘리트들이 독과점 기업가로 변신하고, 그들 일부가 권력을 통제하는 조건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