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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_20100705_멕시코 마약과 폭력

2011-03-03l 조회수 2635

 2003년 멕시코의 한 대학에서 계절학기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종강에 즈음하여 학생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으레 그렇듯이 와인과 데킬라를 곁들인 술자리에 분위기가 익자, 학생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 함께 발라드풍의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요상했다. 물어보니 마약 갱스터의 영웅담을 노래한 마약 발라드(나르코코리도)라고 한다. 티그레스 델 노르테 그룹이 부른 ‘남부의 여왕’이란 발라드였다. 가공의 여성 마피아 테레사 멘도사의 무용담을 소재로 한 노래였다. 거리에도 학생들도 모두 이런 마약 갱스터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티그레스 델 노르테, 투카네스 데 티화나 같은 유명한 그룹의 음반 판매량은 늘 기록을 갱신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나르코코리도의 공중파 방송을 금지시켰다지만, 열풍은 쉽게 식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멕시코 북부의 저명한 가수 세르히오 베가가 캐딜락을 타고 가다 갱스터들로부터 총탄 세례를 받고 숨졌다. 베가의 예명은 샤카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줄루 족 전사의 이름을 딴 그도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마약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들은 늘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산다. 가수들은 유명해지기 전에 마약 갱스터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빚을 지기도 하고, 재정적 후원을 받으면서, 갱스터들과 자연스레 얽힌다. 마치 시카고의 재즈 음악인들이 알 카포네와 관계를 맺고, 프랭크 시나트라가 아바나 맙과 관계를 맺은 것과 흡사하다. 이들은 두목의 무용담을 노래하기도 하고, 두목이 주최하는 저녁자리에서 음악을 공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충성심이 부족하다든가, 빚을 제 때 청산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제거된다. 베가의 죽음으로 마약 발라드 가수와 갱스터들의 관계가 새삼 멕시코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다.
  올해에 들어와서 멕시코에서 마약 관련 사망자가 5,400명을 넘어섰다. 하루 서른 명, 한 달에 900명 씩 죽는다. 작년 사망자 총계가 7,500명이었는데, 올해는 쉽게 기록을 갱신할 전망이다. 2007년 이래 25,000 명이 죽었다. 양쪽의 총격전에 희생된 아이들도 900명이 넘었다. 칼데론 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약범죄와의 전쟁이 본격화되었지만, 엄청난 사망자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국도 ‘메리다 이니셔티브’를 통해 멕시코 정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국경 너머의 사태에 대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군과 마약 카르텔의 전쟁은 이미 일상사가 되었고, 끊임없는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멕시코의 마약 전쟁은 또 중미로 비화되고 있다. 멕시코의 카르텔은 중미 지역의 갱스터 조직인 '마라'를 이용하여, 마약 거래, 돈세탁, 인신매매를 일삼고 있다. 중미 지역에도 매년 마약 관련 사망자가 14,000 명에 이른다. 엘살바도르의 공안위원회에 따르면, 마약 폭력의 경제적 비용이 중미 지역 GDP의 8%를 갉아 먹는다고 한다.
  작년 말에 멕시코 북부 국경도시 티화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경찰 패트롤 차량들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대여섯 대 몰려다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두 대가 다니면 카르텔의 표적이 되니 그렇게 다닌다고 누군가 귀띔 해주었다. 카르텔의 무장능력은 치안당국보다 월등하단다. 갱스터들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무기가 경찰의 무기보다 훨씬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 시에도 정부군이 1만 명 가량 주둔해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공안 능력을 비웃기라도 한 듯, 카르텔의 보복 살인은 줄지 않았다.
  마약거래에서 벌어들이는 엄청난 수익 기회 때문에 독버섯을 몇 개 베어내어도 금방 복원된다. 여러 명의 카르텔 두목이 검거되었지만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새로운 카르텔과 두목들이 금방 빈 공백을 메운다. 멕시코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와의 전쟁은 멕시코 내부에서 해결되긴 요원한 것 같다. 미국의 총기매매 규제, 마약거래 대책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멕시코 내부만 피폐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