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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현_20100915_라울 체제의 파트너가 된 가톨릭교

2011-03-03l 조회수 3011

서구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쿠바이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는 우리가 아는 북한이나 동구 유럽, 중국 등의 사회주의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굳이 표현하자면 ‘쿠바식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렸던 쿠바는 라틴아메리카로 진출하던 스페인이 가장 먼저 식민화 한 섬들 중에 하나였고, 마지막까지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최후의 식민지였다. 19세기 말엽 세계 무대에 새로운 제국으로 등장하던 미국이 신식민주의 전략을 취하면서 얻은 첫 결실 중에 하나도 쿠바였다. 이때 미국식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쿠바에 유입되었다. 19세기 동안 독립운동에 반대하며 스페인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가톨릭은 쿠바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자 그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따라서 새로 유입되는 기독교 세력을 저지할 수 없었다.
1959년 쿠바혁명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미국의 코앞에서 반미적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초기 혁명정부는 반종교적 색체를 강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체제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하고 미국의 봉쇄가 강화되자 쿠바는 더욱 모스크바에 의존했다. 소련에 설탕을 수출하고 원유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소련으로부터 받은 수혜는 공짜가 아니었다. 카스트로는 이념적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무신론적 이념 노선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도 그 대가 중 하나였다. 그 전과 달리 학교에서는 무신론을 조장하는 교육이 실시되었고 종교 활동은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쿠바혁명은 가톨릭교회 뿐 아니라 다른 개신교들의 활동도 위축시켰다. 수많은 가톨릭 성직자와 목사들이 쿠바를 등지고 마이애미 행 비행기를 탔다. 정부는 남아있던 성직자들과 신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성직자들을 사형에 처하거나 교회를 폐쇄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쿠바에서 종교에 대한 관용적 정책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이 발생한 후에 나타났다. 산디니스타 혁명은 해방신학과 기초공동체 등에 동조하는 진보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협력으로 이룩된 혁명이다. 이때부터 쿠바정부도 종교가 갖는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1986년 프레이 베토가 카스트로와 인터뷰한 후 쓴 『피델과 종교』라는 책에 이런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결국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 후, 1991년 공산당전당대회에서 무신론 독트린은 철회되었다. 헌법도 쿠바가 무신론 국가에서 세속적 성격을 갖는 국가라는 표현으로 완화됨으로써 종교 활동의 공간을 어느 정도 남겨두었다.
1990년대 들어 교황청과 쿠바 카스트로 정권 사이 외교관계가 호전되었다. 1994년 오르테가 주교가 추기경으로 서임되고 교구와 성당 수가 늘어나면서 쿠바 가톨릭의 위상도 강화되었다. 새 추기경은 쿠바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목교서를 발표해 공산당과 친정부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쿠바 가톨릭은 사회주의 체제와 공존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1998년 1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쿠바방문은 이 섬나라가 변화의 길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 섬을 공식 방문한 교황은 쿠바혁명을 단죄하지도 그렇다고 찬양하지도 않았다. 교회의 최고 지도자는 담화에서 “세계는 쿠바로, 쿠바는 세계로”를 강조하며 개방과 대화를 촉구했다. 교황의 방문으로 쿠바 내 종교의 자유가 조금 더 확대되고, 교회의 제도성이 강화되는 성과가 있었다. 교황이 미국의 대 쿠바 봉쇄가 비인도적인 처사임을 천명하자 쿠바정부도 세계를 향해 미국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는 정치적 성과를 얻어냈다.
오늘날의 쿠바의 주교들은 폴란드 주교들이 했듯이 정부를 붕괴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의 봉쇄를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쿠바정부를 지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가능한 한 정치적 문제로 정부와 충돌하는 것을 피하려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가 그랬듯이 정부의 비판세력이 되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 오르테가 추기경은 “교회는 쿠바에 없는 야당의 역할을 수행해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천명했다. 그는 원론적으로 화해와 평화를 주장한다. 가톨릭교회는 “친정부 사람과 반정부 사람 모두의 교회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주교들의 입장에 대해 일부에선 현 체제를 정당화 하는 ‘침묵의 공범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 지도부는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고, 교리교육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목적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쿠바 사회의 거의 유일한 시민사회로서 인권 분야에서만 최소한의 역할을 하려한다.
쿠바가 카스트로 체제에서 라울 체제로 바뀌자 가톨릭교회는 더욱 라울과 자주 대화하고 있다. 라울도 국가적 이슈들에 대해 주교들과 더 자주 만난다. 지난 7월 주교들은 쿠바정부가 정치범과 양심수들을 석방하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같은 달 교황청 외무성 장관인 맘베르티 몬시뇰이 쿠바를 방문한 것도 가톨릭교회와 쿠바정부의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보고 쿠바 전문가들은 가톨릭교회가 쿠바의 민주화 이행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단순히 ‘사회주의체제에서 생존하기’라는 전략을 넘어서 탈출구를 찾는 쿠바의 개혁과정에 동참하려 한다. 오늘날 쿠바 가톨릭교회가 이 섬나라의 개방과 민주화에 어떤 기여를 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