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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_20100322_"어머니 땅" 사수에 나선 사파티스타들

2011-03-02l 조회수 2659

지난 2월 6일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의 사파티스타 원주민 마을 볼롬 아하우(Bolom Ajaw)에서 총성이 울렸다. 사파티스타 원주민들과 OPDDIC간에 무장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1월 20일부터 OPDDIC이 이 마을에 난입하여 토지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항하여 마을 원주민 230여명이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Frayba 인권센터(Fray Bartolome de Las Casas Human Rights Centre)의 조사에 따르면, 이 날 충돌에서 OPDDIC은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에게 네 차례나 발사하여 한 명이 죽고 열여섯 살 난 아이를 포함해서 사파티스타 원주민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 아직도 이 지역에서는 감시용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경찰이 상주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5일 후인 2월 11일 모렐리아(Morelia)에 있는 사파티스타 “좋은 정부 위원회”(Junta de Buen Gobierno)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좋은 정부 위원회”는 2월 6일 볼롬 아하우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담자들이 누구인지 상세히 밝히면서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을 공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는 한편 “좋은 정부 위원회”는 대화의 문이 항상 열려있음을 강조하면서 정부에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제안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툭스틀라 주청사에서 사비네스(Sabines) 주지사가 입회한 가운데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것은 만일 사파티스타 대표들이 참석하지 못하면 멕시코 정부군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구실을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사파티스타 원주민들과 OPDDIC이 유혈충돌로까지 이어지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이 지역을 주요 관광지역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정부로서는 사파티스타 공동체들을 손아귀에 넣을 필요가 절실했다. 아구아 아술 폭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볼롬 아하우는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인해서 최근에 관광투자처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어느 정도 개발된 아구아 아술 보다 더 아름다우면서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폭포가 볼롬 아하에는 여럿 더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정부는 통제 대상 지역으로서 이 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정부는 2007년부터 치아파스 북부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마야유적지인 팔렌케를 포함한 밀림지대를 개발하려는 ‘팔렌케 CIP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멕시코의 ‘새로운 여행 창구’인 ‘마야세계로 가는 관문’을 개발하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따라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관광 중심지인 산 크리스토발 델 라스 카사스에서 팔렌케 마야 유적지까지 치아파스를 관통하는 새로운 고속도로를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치아파스 북부의 6개 무니시피오를 포함하고 있고, 비용만 해도 토지 매입에 4억 페소, 팔렌케와 아구아 아술을 잇는 통신망 건설에 1억 페소를 배정해 놓고 있다.
이 ‘팔렌케 CIP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무엇보다도 원주민들의 토지를 확보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정부는 사파티스타운동이 치아파스에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의식하고 불안하게 여기고 있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은 사파티스타 자치조직과 EZLN이 개발계획을 반대하는 저항의 근거지로 보고, 이것을 파괴해야 개발에 필요한 안전을 보장하고 국토에 관한 통제권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파티스타 원주민 공동체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 볼론 아하우뿐 아니라 몬테스 아술레스(Montes Azules), 산 크리스토발 인근에 있는 미치톤(Mitziton), 세바스티안 바차혼(Sebastian Bachajon), 치코무셀로(Chicomuselo) 같은 사파티스타 원주민 마을에서 국가와 준군사조직과 대기업들이 또 다시 “어머니 땅”을 빼앗고 파괴하려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인 “어머니 땅”과 거기에서 누려온 자치(autonom?a)를 지키려고 목숨 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인권단체인 Frayba는 사파티스타들이 발전시켜온 평화로운 자치활동을 파괴하는 정부의 폭력을 비난하면서, 멕시코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시민단체들에 도움을 요청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 여러 나라의 시민 단체들이 치아파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폭력 사태를 비난하면서, 3월 12에서 21일까지를 멕시코 정부에 대한 항의주간이자 “사파티스타 공동체들과의 연대활동 주간”으로 선포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사파티스타들과의 연대에 관심 있는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사파티스타 원주민 공동체들과 연대활동을 조직하고 있는데, 영국의 에딘버러 치아파스 연대 집단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사파티스타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1994년 이래 15여 년 동안 사파티스타들은 피나는 투쟁을 통해서 치아파스에 5개의 카라콜(Caracol)을 중심으로 자치를 실시했다. 사파티스타들만의 자치구역을 선포하여 종래의 체제와는 전혀 다른 정치, 교육, 의료, 행정 체제를 구축했다. 사파티스타들은 정부의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굳건히 이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관광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사파티스타운동의 근거지들을 모조리 싹쓸이하려 하고 있다. 이에 볼롬 아하우 원주민들처럼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은 사파티스타운동이 한창일 때 못지않게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은 지난한 투쟁을 통해서 얻은 강한 연대의식과 자기 규율의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금 치아파스에서는 사파티스타운동의 존폐가 달려 있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파티스타 원주민들의 “어머니 땅” 사수 투쟁은 단순히 토지를 지키려는 투쟁이 아니다. 과거 500년 동안의 식민지적 삶을 거부하고 원주민이 스스로 통치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그만큼 원주민들은 절박하다. 멕시코 정부와 주정부는 대기업과 준군사조직과 손을 잡고 돈과 폭력으로 맹공을 가하고 있다. 사파티스타운동이 1994년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따라서 “또 다른 캠페인(La Otra Campa?a)”운동의 지지세력들의 결집과 국제적인 시민단체들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사파티스타운동의 존폐여부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