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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_200912_아이티 원조의 국제정치

2011-03-02l 조회수 3211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가 본격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물밑 샅바 싸움도 한창이다. 프랑스에서 보낸 야전병원 설비를 실은 비행기는 한동안 공항에 착륙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프랑스 정부의 당국자 주앙데는 공항 통제를 맡은 미군을 나무랬다. “아이티를 원조해야지 점령을 해서는 아니 된다”며 불편한 심기를 라디오에다 흘렸다. 프랑스의 위신도 말이 아니지만 유럽연합도 굼뜬 대응에 발언권을 잃어 버렸다. 협의만 하다 보니 적기에 강력하고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미국은 이번 지진을 카리브 해역의 통제권을 다잡는데 좋은 호기로 보는 것 같다. 이미 2천명의 해병대를 포함한 1만 2 천명의 대규모 파병을 시작했다. 30대의 비행기, 항공모함 칼 빈슨, 순양함 노르망디, 구축함 언더우드도 함께 출동한다. 미국 국방부와 산하의 남부사령부(사우스컴)가 통제 지휘부가 된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의 아이티에서 치안 유지와 질서 회복 업무를 맡게 될 것이다.
  “미국의 호수”인 카리브해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이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아이티에서 대량 탈출하고 있는 사람들의 미국 내 불법 유입을 막아야 한다. 보트 피플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은 것이다. 둘째,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중간 기착지가 되어 있는 이곳을 이번에 정리하고 싶을 것이다. 멕시코와 콜롬비아와 연계된 마피아들이 이곳 거리에서 힘을 쥐고 있다. 셋째, 이번 기회에 아이티 문제를 확고하게 해결하고, 미국의 교두보를 구축하면 쿠바와 베네수엘라와 같은 반미 국가들의 위세도 위축될 것이다. 차베스가 카리브 빈국들에게 석유를 싼 값으로 원조하는 프로그램인 ‘페트로-카리베’는 의외로 여러 나라들을 끌어 모았다.
  차베스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아이티 사태에 대한 미국의 파병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3천명의 미군이 이미 도착했다고 읽었다. 마치 전쟁터에 가는 군인처럼 무장한 해병대들이라고 한다. 온갖 무기는 다 있지만, 정작 보내야할 것은 의사, 의약품, 연료, 야전병원이 아닌가! 미국은 비밀스런 방식으로 아이티를 점령하려 한다.” “길거리에서 그들을 볼 수가 없다. 그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던가? 부상자를 수색하던가? 당신들은 그들을 보지 못한다. 나도 보지 못했다. 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결손 국가인 아이티에는 이미 9천명 가량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해 있다. 여기에 1만 2천명의 군대가 투입되니, 9백만 인구에 2만 1천명의 병력이 주둔하게 된다. 2천 8백만 인구의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 숫자가 7만 명이니, 인구 당 파병 숫자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만큼 군사화의 수준이 높다. 미국은 유엔과 역내 이해관계자인 브라질과 캐나다와 협력하여 원조 작업을 조정할 것이다. 이미 국가는 붕괴되었고, 유엔의 사무소 설비도 파괴되었다고 하니, 미군의 시설이 정부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은 아이티 방문 시에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우리는 (아이티 국가를) 지원하려고 할 뿐이지,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도 파병은 “무정부 상태에서 아이티 인들과 무고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해병대는 1915년부터 1934년 사이에 근 20년간을 아이티를 점령한 바 있다. 1994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함정을 파견하여 쫓겨난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다시 옹립한 적도 있다. 하지만 2004년에 미국은 프랑스와 캐나다의 동의아래 반정부 세력을 밀어주어 아리스티드 정부는 전복하고 말았다. 사탕수수밭과 커피 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프랑스의 압제에서 벗어나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공화국을 탄생시킨 아이티. 원조 사업 속에서도 파워 게임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