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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남미와도 화해 또 ‘듣는 외교’

2009-04-20l 조회수 2826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

ㆍ오바마 OAS정상회의서 새 협력시대 제안
ㆍ좌파 지도자들 쿠바문제 등 실질변화 촉구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8일 껄끄럽게 지내온 중남미의 좌파 지도자들과 만나 경제협력을 강화할 것을 다짐했다.

유럽과 중동에 이어 ‘뒷마당’인 중남미 국가들과의 화해를 모색함으로써, 전임 행정부 시절 빚어진 갈등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쿠바 제재와 같은 오랜 숙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화기애애한 회담장에 그늘을 드리웠다고 외신이 전했다.

오바마는 이날 트리니다드 토바고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참석,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 중남미 정상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미국의 중남미 지역 정치개입에 대한 오랜 불만을 경청하면서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제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미국의 경기침체로 수출부진을 겪고 있는 중남미 국가를 위한 경제성장 기금 창설과 카리브해 지역에서의 안보협력 확대를 선언했다. 또 기후변화를 막고 재생가능 에너지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것을 제안했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백악관은 “건설적인 회의였다”며 “역내에서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오바마는 이달 초 유럽 순방 때처럼 이번에도 ‘듣는 외교’에 주력했다. 그는 “배울 것이 많이 있다”면서 “좀더 효율적으로 함께 일하기 위해 많은 걸 듣고 이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남미 정상들에게 “모든 문제의 탓을 북쪽(미국)으로만 돌리려고는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회의 첫날인 17일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도 통역을 사이에 놓고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어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도 만났다.

차베스의 단짝인 모랄레스는 오바마 정부의 관계개선 의지를 높이 평가한 뒤 “하지만 볼리비아는 아직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조치를 주문했다. 모랄레스는 지난해 마약밀매 연루 혐의로 자국 주재 미국 대사를 추방했다.

오바마는 로널드 레이건 정권 때부터 미국의 눈엣가시였던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과도 악수를 했다. 1984년 대통령에 당선된 오르테가는 재임 기간 내내 미군이 지원하는 콘트라 반군과 싸우다 90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후 절치부심 끝에 2006년 다시 집권했다.

오르테가는 오바마와 인사한 직후 50여분에 걸쳐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61년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부터 거론하며 미국의 잘못을 열거했지만, 오바마에게 화살을 돌리지는 않았다. 이는 ‘미국은 밉지만 오바마는 미워하지 않는’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의 이중적 감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됐다.

오바마는 오르테가의 연설 뒤 “내가 생후 3개월 됐을 때의 일(피그만 침공)로 날 비난하지는 않아줘서 고맙다”고 재치있게 받았고, 정상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18일 오찬 뒤 차베스는 “다음 회의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열리길 바란다”고 말해, 미국이 62년 제명한 쿠바를 미주기구에 복귀시켜 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도 오바마의 화해 외교를 높이 평가하면서 “하지만 결국 쿠바 문제가 미국의 변화된 자세를 보여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