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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휩쓰는 ‘차베스식 통합주의’

2009-07-27l 조회수 3173



기사입력 : 2009-07-20 18:07:02

ㆍ석유 무기로 주변국 ‘쥐락펴락’
ㆍ에콰도르·볼리비아 등
ㆍ장기집권 개헌 유행처럼 번져


중미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19일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온두라스에서 개헌을 둘러싸고 발생한 쿠데타로 한 달째 이 지역이 시끄러운 와중에 또다른 변수가 발생했다. 중남미 전역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사진)의 ‘볼리바리즘(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의 중남미 대통합 이상을 따르는 정치이념)’에 휘둘리는 형국이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이날 수도 마나과에서 열린 산디니스타 혁명 30주년 기념식에서 “대선 재출마를 위해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념식에는 차베스도 참석했다. 오르테가는 1979년 좌파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을 이끌고 소모사 독재정권을 몰아낸 뒤 6년간 집권했다. 2007년 1월 다시 선거에서 승리, 두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연임을 금하고 있고 임기도 2회로 제한하고 있어 오르테가가 2011년 선거에 나오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은 몇년 새 중남미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시작은 역시 차베스였다. 그는 두 차례 힘겨운 싸움 끝에 올 초 개헌안을 국민투표에서 통과시켰다. 같은 ‘좌파 전선’에 속한 에콰도르, 볼리비아 대통령도 개헌 국민투표로 장기집권의 법적 근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니카라과와 이웃한 온두라스의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개헌을 추진하다 지난달 말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이들 나라의 정치상황은 비슷하다. 좌파가 근소한 우위를 보이고는 있지만 여론은 극도로 갈려 있다.

정부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빈민층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중산층·보수파들은 ‘좌파 독재’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가지도자들은 화합을 모색하기보다는 국민투표 같은 수단을 이용해 다수결의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한다. 온두라스는 이런 ‘밀어붙이기’가 역풍에 부딪친 케이스다.

니카라과, 볼리비아, 에콰도르, 온두라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차베스의 석유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베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기구(OAS) 대신 2006년 자신이 창설한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을 지역의 중심축으로 만들려 한다. 니카라과와 온두라스는 소국이지만 이 동맹 내에서 제법 큰 정치적 지분을 갖고 있다.

차베스는 2005년부터 ‘페트로카리베(Petrocaribe)’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주변국들에 석유를 싼 값에 공급하고 있다. 또 ‘카리브 식량동맹’을 지난해 신설, 빈국들을 지원하고 있다. 차베스는 주변 동맹국을 묶어 중남미 독립지도자 시몬 볼리바르의 대통합 이상을 실현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니카라과의 개헌 움직임이나 온두라스 사태도 차베스의 이런 야심과 무관치 않다. 셀라야 측과 쿠데타 세력은 19일 셀라야의 귀국 허용 등을 놓고 협상을 했으나 결렬됐다. 온두라스 임시 대통령 로베르토 미첼레티는 “차베스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BBC방송은 “셀라야는 2005년 취임할 때까지 차베스와 일면식도 없었으나 집권 뒤 정치·경제적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 그와 손잡았다”며 “지금은 모든 행보를 차베스와 의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차베스가 주변국들을 돕는 동안 베네수엘라 인구의 38%는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다. 미국진보센터의 로베르토 발렌시아는 “볼리바리즘의 성공 여부는 차베스가 이 같은 내부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