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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 이념 집착않고 적대세력까지 포용 ‘화합 대통령’

2010-09-28l 조회수 2846

 


빈곤율 43% 감소 등 커다란 경제 성과

복지 적극 시행하며 산업 지원도 확대

수수한 이미지·품성 등 서민적 매력 커

올해는 1810년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콜롬비아 등 남미 여러 나라가 스페인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지 20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세기 동안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지향해온 남미는, 특히 지난 10년간 좌파 지도자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각 나라의 성과는 서로 다른 리더십 아래서 평가가 엇갈린다. 남미 독립 200주년을 계기로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칠레 4개 나라의 ‘제2독립’을 향한 변화와 현실을 현지 취재를 통해 6회에 걸쳐 짚어본다.

남미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내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1970년대 말 파업투쟁으로 그를 전국적 인물로 키운 상파울루시 인근 상베르나르두를 지난 2일 찾아갔다. 오늘날 룰라 대통령을 만든 역정이 시작된 곳이다. 룰라 대통령은 이곳 금속노조 지도자에서 정당 지도자로, 대통령으로 성장해갔다.

올해 78살인 폴크스바겐 공장 퇴직자 줄리우 마리아누는 룰라 대통령과 함께 한 날들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금속노조 건물 뒤 선술집에서 룰라 대통령과 자주 술잔을 기울였다는 그는 “룰라는 교육은 못 받았어도 머리 회전이 빠르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다”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배운 것은 적어도 머리가 좋고, 달변이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10대 소녀 때 룰라 대통령과 파업 선동활동을 한 브랑카 파리야스는 “그는 한번 본 사람은 반드시 기억하고 다시 만나면 꼭 이름을 불렀다”며 “말을 참 잘해, 파업 현장에서 인기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물러나는 대통령의 전례없는 인기의 배경에 수수한 이미지와 품성도 한몫했다고 입을 모았다. 파리야스는 “룰라는 대통령이 된 뒤 금속노조를 여러 번 찾아오고, 옛 친구들과 연락하며 뿌리를 잊지 않았다”며 “출신 기반을 잊지 않고 우리를 위해 일한 게 큰 지지를 받는 이유 같다”고 말했다.

브라질 국민 일반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은 4년밖에 받지 못한 채 구두닦이를 하고, 공장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고, 첫번째 아내가 결핵에 걸렸으나 치료받지 못하고 숨진 일 등은 성공 신화를 더 빛나게 하는 소재로 쓰였다. 상파울루대 학생 캐서린 언글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북동부 출신이 대통령이 돼 서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말하는 방식과 행동 등 서민적 매력이 모두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빈곤율을 절반 가까이 떨어뜨린 룰라 대통령의 실적은 이런 평판과 겹쳐져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굳혔다. 2003년 1월 첫 각료회의에서 “(첫번째) 임기 말에는 모든 브라질인이 하루 세끼를 먹게 만들겠다”고 공언한 룰라 대통령은 곧 ‘기아 제로’ 프로그램에 쓸 돈도 모자라다며 전투기 12대의 구매를 유보했다. 서민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제스처였다.

그렇다고 ‘반시장’으로 돌아서지도 않았다. 그는 과거 낙선한 세 차례 대선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난하며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막상 집권하고서는 복지 프로그램을 적극 시행하면서도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산업 지원책과 감세 정책도 함께 폈다. 전임 정권한테서는 “저주받은 유산”만 받았다면서도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정책을 유지해 인플레이션을 누르고, 역시 과거 정권이 만든 복지 프로그램들을 확대개편하는 길을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룰라 대통령은 더는 좌파가 아니라며 노동자당을 떠나는 이들도 나왔다. 그러나 또하나의 장기인 평이하면서도 능란한 화술로 비난을 비껴가는 노련함도 보여준다. 퇴임을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사회주의를 하기 전에 분배해 줄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나는 다중 이데올로기를 지닌 사람”이라며 친시장 정책을 옹호했다.

대표적 해방신학자로 룰라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고, 집권 초 대통령 고문을 지낸 프레이 베투는 “룰라 정권의 가장 큰 과오는 농토, 정치, 경제, 조세 등 어느 곳에서도 구조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투는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상대가 누구든 그의 입장을 경청하고 모두를 동등하게 대했으며, 전통적 적대세력까지 끌어안았다”며 “이런 능력이 거의 절대적인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견습공 때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던 룰라 대통령의 연설에 감화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세르지우 아파레시두 노브리 현 금속노조 위원장은 “룰라는 원래 ‘노동자당은 노동자당이고 브라질은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대국이라 혼자 통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닌 사람이다. 그가 변절했다는 것은 뭘 모르는 소리”라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의 타협적 성향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모두 대화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국가정상”이라는 표현도 만들어냈다. 카르도주 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후벵스 히쿠페루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누구와도 화합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룰라 대통령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지능적인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상파울루·상베르나르두/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