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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사파티스타들의 갈등

2011-03-22l 조회수 4806


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사파티스타들의 갈등

김윤경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지난 2월 3일 치아파스 주에서는 La Otra Campa?a 소속 116명의 사파티스타들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체포된 사파티스타들은 아구아 아술(Agua Azul) 인근 바차혼(Bachajon) 원주민들이었다. 이 사파티스타들은 산 세바스티안 바차혼(San Sebastian Bachajon) 에히도 주민들로서, 지난 2년 동안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인 아구아 아술에 있는 매표소를 관리해왔다. 이것은 원주민 공동체에 상당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소득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지난 2일 PRI 지지자들이 경찰과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 매표소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아가 버렸다.


이에 대해 사파티스타들은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다음날, 사파티스타들은 산크리스토발에서 팔렌케로 가는 주요 도로를 장악하고 가로막았다. 주와 연방 경찰 500여명은 항의하는 사파티스타들을 체포하여 팔렌케에 있는 경찰서로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PRI 지지자 1명이 죽고 두 명이 부상당했다. 당국은 이러한 대량 체포 사태를 정당화하려고, 사파티스타들이 아구아 아술로 가는 도로를 막고 17명의 여행객을 인질로 붙잡고 있었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 다행히 바로 다음 날 체포된 사람들 대부분이 석방되었다. 하지만, 10명은 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바르톨로메 라스 카사스 인권센터(Frayba)는 그 과정에 불법적이고 비인권적인 요소들이 개입되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정부와 사파티스타들 간의 개발을 둘러싼 충돌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계획된 "팔렌케 CIP 프로젝트"1) 이후 치아파스 주에서는 이러한 유혈 충돌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바르톨로메 라스 카사스 인권센터에 따르면, PRI 지지자들은 2002년 볼론 바하우(Bolon Bajaw)에서 시작해서 사파티스타들이 점유하고 있는 토지와 이권을 빼앗으려는 시도들을 계속해왔다. 1년 전에도 볼론 아하우에서 충돌이 일어나 원주민 한 명이 죽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바차혼 사건 11일 후에는 미치톤(Mitziton)에서 준군사조직이 La Otra Campa?a 소속 원주민들을 체포하고 감옥에 투옥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거시적인 맥락이다. 우선 정부는 “팔렌케 CIP 프로젝트”를 통해서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시에서 세계적인 관광지인 팔렌케로 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라칸돈 밀림지대를 개발함으로써 마야세계로 가는 여행창구를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CIP 프로젝트는 멕시코의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인 PPP(Pan Panama Plan)와 연결되어 있다. PPP는 외국의 다국적 기업라스 자본을 이용하여 멕시코 남부의 여러 주들, 예를 들어, 푸에블라, 베라크루스, 오아하카, 치아파스, 타바스코, 캄페체, 유카탄, 킨타나 로 같은 주들을 철도, 도로, 항만, 공항 등의 건설을 통해서 중미 국가들과 연결하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계획을 추진하는 정부와 기업라은 그 지역의 에너지와 석유와 농업의 개발을 통해서 지역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등의목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치아파스을 철도, 도 그 지역의 거주하고 있는 공동체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서 알 수 있엯의, 외국의 다국적 기업라과 손을 잡고 추진하는 정부의 이 개발 프로젝트는 원주민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개발에 대해 원주민들은 “토지”와 “자치”라는 측면에서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개발 프로젝트는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어머니의 땅”을 공격하고 있다. 지난 해 2월 볼론 아하우 지역에 무장 군인들이 난입하여 토지를 빼앗고 통제권을 행사하려고 했던 것처럼, 정부는 관광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사파티스타 공동체들의 토지를 공격하고 있다. 토지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파티스타들의 근거지를 없애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토지가 바로 사파티스타들의 자치의 원천이라는 점이다. 2003년부터 사파티스타들은 치아파스에 사파티스타 자치구역을 선포하고, 5개의 카라콜(Caracol)을 설치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각 카라콜마다 “선정 위원회”(JBG, Junta de Buen Gobierno)를 두고 자치를 실시하고 있다. 그 지역 안에서 사파티스타들은 정부가 추진해온 종래의 체제와는 다른 독자적인 정치, 교육, 의료, 행정 체제를 구축했다. 진정한 의미의 원주민들의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파티스타들은 정부의 지원을 일체 거부하고 자체적인 노력과 국제적인 비정부기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금까지 자치를 실현해오고 있다.


따라서 사파티스타들은 정부의 개발 프로젝트를 자신들의 영토와 자치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2월 3일에 아우아 아술의 매표소에 대한 통제권을 앗아간 것에 대해 항의했던 것도 단순한 이권 싸움이 아니라, 빼앗긴 토지를 되찾는 과정의 일환이자 자치권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이러한 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원주민의 갈등은 멕시코에만 한정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 남미에서는 “남미 인프라 통합 이니셔티브(IIRSA)" 프로젝트를 통해서 수송, 에너지, 통신 사업을 중심으로 영토적 지역적 통합과 발전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다. 10개 축을 중심으로 남미 전체의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각국 정부와 초국적 기업과 원주민 공동체와 시민사회 간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안적인 개발정책을 통해서 원주민의 영토와 자치가 최대한 존중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1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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