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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제도혁명당(PRI)?

2011-09-23l 조회수 2954

부활하는 제도혁명당(PRI)?

조영현(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정치와 관련해서 여론의 향배를 간음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거이다. 이번 7월 3일 지방선거는 멕시코주, 꼬아윌라주, 나자릿주의 주지사를 선출하는 작은 선거였지만 2012년의 대선을 전망할 수 있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세 지역 모두 제도혁명당(PRI) 후보가 승리를 쟁취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는 2000년 대선에서 패배했던 거대한 공룡 정당인 제도혁명당이 부활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제도혁명당은 32개의 주 중에서 19개 주를, 그리고 32개 주의 수도 중 23개를 통치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의 선거 결과를 보면 제도혁명당은 국회의원, 주지사, 시장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획득했다. 예를 들면 현재 500개 하원의원 의석 중 237개를 제도혁명당이 가지고 있다.   

11년 전 대선에서 패했을 당시 일부 학자들은 제도혁명당이 계속적으로 국민의 외면을 받고 멕시코 정치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은 제도혁명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린 정당을 해체하고 재창당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두 전망 모두 틀렸음이 드러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00년 대패한 제도혁명당이 어떻게 선거를 통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는가?

이번 지방선거 후 언론은 제도혁명당 후보들의 승리와 함께 국민행동당(PAN)의 패배를 강조했다. 왜 여당인 국민행동당은 패배했는가? 직접적인 이유는 국민행동당이 집권한 후 보여준 빈약한 성과 탓이다. 깔데론 대통령이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안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가 2006년 취임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3만 명 이상이 마약, 조직범죄, 테러와 관련해 사망했다. 사람을 살해하는 방법도 전대미문의 잔인하고 엽기적인 방법들이 동원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멕시코는 테러와 폭력에 의해 국가안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빠졌다. 좌우할 것 없이 언론은 국민행동당이 공약한 개혁도 달성하지 못했고, 가장 기본적인 폭력과 테러도 통제하지 못해 치안부재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집권 초반 66%에 달했던 깔데론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49%까지 떨어졌다.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는 국정을 실패로 이끈 깔데론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담겨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간단히 말하면 먼저 경쟁력 없는 후보의 선출, 좋은 공약이나 대안의 부재, 게다가 현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통치에 대한 불만이 선거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 정부가 범죄조직과 폭력, 테러를 통제하지 못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를 대변하는 민주혁명당(PRD)도 쓴 맛을 보기는 마찬가지이다. 정치학자들은 이 당도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민심을 읽어내고 국민이 원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계속되는 당내 갈등과 권력 다툼,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돌출 행동과 발언이 그 동안 쌓아왔던 민주혁명당의 정치적 자산을 갉아먹어 투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 것이다. 이것들 말고도 민주혁명당은 최소한 두 가지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정체성이 혼미해졌다는 점이다. 80년대 말 제도혁명당에서 분리될 때 중도좌파 노선을 천명했으나 현재는 제도혁명당과 차별화되는 이념적 신선함이나 정책적 대안이 없다. 둘째, 조직이 약화되었다. 작년 선거에서 일부 지역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체 조직력 때문이 아니라 다른 정당들과 동맹했기 때문이었다. 

제도혁명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 정치학자들은 제도혁명당이 71년간 멕시코를 통치했던 저력이 있는 정당으로서 뛰어난 생존본능과 실용적 노선을 강조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 삼색당(제도혁명당의 별칭)은 지지 기반과 조직이 한 지역에 편중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골고루 퍼져있다. 주로 북부에 지지 기반을 둔 국민행동당이나 중남부에 지지기반을 둔 민주혁명당에 비해 전국정당의 면모를 지닌 강점이 있다. 특히 이 당은 수십 년간 거느렸던 조직들을 선거와 정치에 동원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아직도 제도혁명당에 호감을 지닌 산업별 노조나 노동자, 농민 조직에 통제력이 미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민행동당이 주로 도시와 산업지역, 가톨릭 보수층, 젊은층 유권자를 동원한다면, 제도혁명당은 농촌과 지방, 빈민층, 장년층, 노년층, 저소득층을 비롯해서 전문가 집단이나 중산층에도 고정적인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커지면서 구관이 명관이라고 여론이 확산된 데다 제도혁명당 소속 주지사들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아 유권자들이 신뢰를 회복한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고 결국에 제도혁명당 득표율로 나타난 것이다. 

스페인의 유력 일간지 엘 빠이스(El Pais)가 제시한 지표에 의하면 멕시코 유권자의 55%는 2012년 대선에서 제도혁명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런 호의적인 여론의 흐름은 이 삼색당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지나친 신뢰나 예기치 않은 결정적인 실수가 오히려 제도혁명당을 침몰시킬 수 있다. 아직 대선은 일 년이나 남았지만 언제나처럼 멕시코 대선에도 복병과 변수가 존재한다. 멕시코 정치 특성상 어떤 정당이든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내 역학구도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으므로 이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한 예로 1994년 제도혁명당 대선 후보가 암살당했고, 최근에도 주지사 후보가 암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2011년 7월 3일 지방선거 결과와 여론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혁명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어떤 제도혁명당이 돌아올 것인가? 예전처럼 부패하고, 반민주적이며, 수직적 구조와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가진 제도혁명당일지 아니면, 전혀 새로워진 제도혁명당일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1년간 펼쳐질 정치국면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과연 앞으로 1년간 멕시코가 ‘실패한 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새롭게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할지, 아니면 더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지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201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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