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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_20100216_칠레대선

2011-03-02l 조회수 2625

칠레 대선이 예상대로 우파 후보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13일 1차 투표에서 이미 1위를 차지한 피녜라가 1월 17일 열린 결선투표에서 콘세르타시온 후보 프레이를 다시 눌렀다. 우파의 승리는 피노체트가 집권 연장 여부를 물은 1988년 국민투표 이래 처음이다. 또한 선거를 통해 집권한 것은 무려 반세기만이다.

피녜라의 승리 원인으로 가깝게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칠레의 경제 침체를 꼽는다. 좀 더 멀리는 콘세르타시온의 20년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싫증이 꼽힌다. 특히 이미 한 번 대통령을 역임한 프레이가 다시 대권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콘세르타시온을 박차고 나섬으로써 무소속 후보나 마찬가지 상황에서 입후보한 엔리케스 오미나미가 1차 선거에서 20%를 상회하는 득표율로 3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여당 연합의 후보였다면 참신함을 바탕으로 2006년 바첼렛의 성공담을 되풀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파의 승리를 칠레의 최근 경제 상황, 혹은 콘세르타시온의 20년 집권이라는 정치적 상황으로만 보는 것은 근시안적인 일이다. 우파의 승리는 예고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명백한 운명’이 실현된 것이다. 마치, 미국이 19세기 중반 서부 개척과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헤게모니를 명백한 운명이라고 생각했듯이, 또 브라질이 신은 브라질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자국이 세계의 슈퍼파워가 될 날이 분명 올 것이라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칠레의 명백한 운명은 무엇일까? 1992년의 세비야 엑스포 에피소드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칠레는 자국의 상징물로 기발한 것을 전시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바로 칠레의 남극 영토에서 예인해 간 빙산이었다. 칠레 정부가 빙산을 상징물로 내세우면서 노린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칠레가 더운 지방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미지 홍보 효과였다. ‘더운 지방’이 지닌 이미지, 즉 게으른 유색인종이 사는 곳이며 발전도 더딘 곳이라는 이미지에 혹시라도 칠레가 결부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시도였던 것이다.

이런 발상은 역사가 오래다. 19세기 말, 아니 어쩌면 19세기 중반부터 일부 칠레인들에게 각인된 ‘칠레 예외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칠레 예외주의란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예외적인 국가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칠레가 ‘탈라(틴아메리카)입구(入歐)’, 즉 라틴아메리카에서 탈피해 서구의 일원이 되리라는 희망사항을 함축하고 있다. 칠레의 명백한 운명은 이처럼 칠레 예외주의와 탈라입구로 요약된다. 칠레인들은 명백한 운명의 실증적 근거로 비교적 무난한 건국 과정, 영국 상인과 금융가들의 칠레 조기 진출, 페루와 볼리비아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1879~1883)의 승리, 상대적으로 높은 백인 비율, 피노체트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순탄한 민주주의 전통 등을 꼽았다.

명백한 운명론은 피노체트 시대에는 수면 아래로 잠수했다. 독재/반독재의 치열한 전선이 형성된 상황에서 ‘칠레 예외주의’는 부차적인 관심사였고, 그리 설득력을 발휘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명백한 운명론이 부활했고, 나아가 그 운명이 실현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희망마저 품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선정부의 등장으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이 사라지고, 경제적으로는 ‘칠레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칠레의 명백한 운명은 칠레 예외주의와 탈라입구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경제성장에 흐뭇해하던 1990년대에 사회학자 토마스 물리앙은 칠레 사회를 ‘신용카드 사회’로 규정하며 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시장 물신주의를 질타했다. 결과적으로 물리앙은 족집게도사처럼 피녜라의 등장을 예언한 셈이 되었다. 칠레 최고의 부호인 피녜라가 부를 축적하게 된 출발점이 피노체트 시절에 벌인 칠레 최초의 신용카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칠레의 명백한 운명은 애당초 시장의 승리였다.

중도좌파인 기독교민주당과 좌파인 사회당이 대주주인 콘세르타시온이 피노체트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점은 한때 논란거리였다. 좌파의 이념과 우파의 경제지상주의가 동거할 수 있느냐, 콘세르타시온이 진정한 좌파인가 아니면 기득권자인가, 좌파라고 해서 경제적으로 무능하리라는 법이 있는가 등등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튼실한 경제성장은 모든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칠레 사회나 콘세르타시온 체제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까? 특히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칠레는 성장에 비해 분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정치적 자유는 있으되 경제적ㆍ사회적 평등이 결여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과연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그래서 혹자는 민주화는 허구라고 말한다. 독재에서 민주정부로 이행된 것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에서 시장(자본주의)로 이행된 것이라고. 시장의 헤게모니 장악, 그렇다면 그 시장을 대표하는 피녜라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야말로 칠레의 명백한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더 명백해진 운명이 칠레를 기다리고 있다. 피녜라가 승리하자 그가 대주주인 지주회사 주식이 곧바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루 사이에 20%가 폭등한 것이다. 물론 이미 칠레 최고의 부호인 피녜라 자신이 권력을 이용해 자기 재산을 더 늘릴 정도로 타락한 인물도 아닌 것 같고, 아직도 지지기반이 건재한 콘세르타시온이 이를 두고 볼 리 만무하다. 그러나 피녜라의 승리, 그의 지주회사 주식의 상한가 기록은 칠레 전체에 분명한 사인을 주었다. 경제가 곧 힘이고 성공의 척도라는 사인이다. 피녜라 자신은 중소기업 지원과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와 함께 연6%의 성장을 약속했다. 전자가 재벌 이미지 불식을 위한 제스처라면, 후자는 분배 문제는 파이를 키우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전형적인 성장론자의 믿음을 표출한 것이다.

콘세르타시온 체제에서 분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비판은 받았지만, 적어도 라고스나 바첼렛 정부의 주요 의제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 수 접고 참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장의 승리, 특히 기업가의 집권으로 성장 일변도를 지향할 가능성이 큰 시장의 승리가 선포된 마당이니, 분배 문제가 이슈가 되는 순간 사회적 약자들이 더 이상 참고만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명백한 운명이 실현된 순간 칠레를 기다리고 있는 더 명백해진 운명은 성장론과 분배론의 본격적인 힘겨루기인 것이다.

그 승부가 어떻게 날지 예상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섣부른 일이리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칠레인들이 명백한 운명이라고 생각한 칠레 예외주의나 탈라입구는 성장과 분배의 승부가 성장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다면 불가능한 꿈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고질적인 병폐인 빈부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어떻게 탈라틴아메리카를 선언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