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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에 등장한 따스한 판자촌…한인들 수재민 돕기

2016-03-11l 조회수 1668

파라과이에 등장한 '따스한 판자촌'. (아순시온=연합뉴스) 김진현 월드옥타 명예기자 = 지난 6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항구에서는 수재민을 위한 임시 가옥 100채를 짓는 공사가 시작됐다. 파라과이 당국, 봉사단체, UIP Joven(파라과이산업협회 청년지회)에서 350여 명이 동참했다. 이들 가옥 중 5채는 재파라과이한인부인회, 월드옥타 아순시온지회, 수건 제조업체인 '킴스타올' 등 한인 사회가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기부금으로 설립됐다. 2016.3.11 photo@yna.co.kr

 

'홍수 대란' 속 피난민 속출임시 가옥 짓기에 동참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김진현 월드옥타 명예기자(아순시온) = ", 동양인이시죠?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요?"

 

남미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던 지난 6.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파라과이강 연안 항구에서는 때아닌 공사판이 벌어졌다. 뙤약볕 아래 망치와 톱을 들고 구슬땀을 흘리는 인원은 무려 350여 명. 대홍수로 집터를 잃은 수재민을 위해 임시 가옥을 짓는 자원봉사자다.

 

가옥이 모두 들어서면 100. 말 그대로 거대한 '판자촌'이 조성되는 셈이다. 파라과이 정부와 현지인들이 자국민을 도우려고 마련한 가옥이지만 이 중 5채는 '국적'이 따로 있다.

 

'메이드 바이 코리안'(Made by Korean).

 

파라과이 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5채 분량의 예산인 2500만 과라니(520만 원)를 쾌척한 것이다. 이날 공사장에서 '일꾼'으로 봉사에 참가한 김진현(31) 씨는 "봉사자들이 대부분 파라과이 현지인들이고, 아마도 동양인은 나뿐이었을 것"이라며 "한국인으로서 파라과이 수재민을 돕는 데 동참하게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파라과이에 이민 간 그는 수건 제조업체 '킴스타올'을 설립한 청년 CEO이자 연합뉴스-월드옥타 명예기자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파라과이는 한국에서 지구 정반대편에 있지만 이처럼 5천여 명에 달하는 한인이 뿌리를 내렸다. 한인이 첫발은 디딘 건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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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민에게 쉼터를" 파라과이 공사판에 구슬땀. 2016.3.11 photo@yna.co.kr

 

인도양과 대서양을 건넌 뒤 파라과이강을 거슬러 올라가 아순시온항에 내린 농업 이민자 100여 명은 맨주먹 하나로 척박한 남미 땅을 일궜다.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부모를 보고 자란 2세들은 법조계, 의회, 방송계, 의료계 등 주류 사회로 속속 진출했다.

 

한인들은 파라과이에 '꼬레아'를 알리는 데도 발 벗고 나섰다. 한류 열풍을 타고 태권도장·한글학교·한식당이 북적거렸고, 한인 기업의 사회 공헌 덕택에 한국은 파라과이인에겐 '멀지만 친근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장벽이 모두 허물어진 건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언어. 한인 1세대에겐 스페인어나 파라과이 원어민 언어인 과라니어가 여전히 낯선 탓에 아직은 현지인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일본인 등 다른 동양인에 비해 이주 역사가 짧은 것도 걸림돌이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서 "한인들은 좋게 말하면 결속력이 높고, 안 좋게 말하면 끼리끼리 뭉쳐 산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김 대표의 진단은 조금 다르다. "한인 사회는 그야말로 과도기를 맞았죠. 중심축이 1세대에 이어 2세대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거든요. 최근엔 한인회 회장단이 대부분 2세로 구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파라과이 주류 사회로 적극적으로 진출하자는 인식이 한인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고 봐요. 새로운 바람이 이미 불기 시작한 거죠." 한인 사회가 파라과이인 중에서도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인들의 상당수는 농사꾼으로 시작해 옷가게·식료품점 장사꾼을 거쳐 창업주에 오르기까지 눈부신 계층 상승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파라과이인을 종업원으로 고용하면서 주로 서민층을 접할 계기가 많았다는 것. 김 대표는 "아무래도 종업원 중에서는 하층민이 많았을 것"이라며 "그래서인지 한인들은 이제 중산층 이상에 올랐는데도 '그동안 받은 도움을 돌려줘야 한다'면서 파라과이 서민을 도우려는 분이 많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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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청년들 "수재민 보금자리 지어드려요". 2016.3.11 photo@yna.co.kr

 

지난해 말 파라과이를 덮친 대홍수로 온 나라가 비상사태에 들어갔을 때도 한인들은 긴급 구호물자를 수송하는 등 두 팔을 걷어붙였다. 재파라과이한인부인회는 수백만 원어치의 쌀과 우유와 밀가루 등을 기부한 데 이어 수재민을 위한 임시 가옥 마련에도 300만 원가량을 쾌척했다.

 

황월희 회장은 "파라과이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큰데도 막상 뾰족한 방법이 없어 고민할 때가 많았다"면서 "앞으로도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파라과이 사람들을 도우며 소통하는 이웃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밖에 월드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 아순시온지회, 김 대표가 이끄는 킴스타올이 각각 100만 원을 기부했다.

 

파라과이는 홍수가 할퀴고 간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다시 물난리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오는 46월께 최악의 홍수가 올 수 있다는 불길한 예상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불행을 기다릴 수는 없다.

 

아순시온 항구에 모인 봉사자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구슬땀을 흘러가며 지난 56일에 걸쳐 임시 가옥 40채를 완성했다. 오는 2627일 나머지 60채를 지으면 수재민 100가구가 보금자리를 찾는다. 겉으로 보기엔 판잣집 같지만 알고 보면 방 2, 부엌 등을 갖춘 어엿한 집으로 모델하우스를 연상케 한다.

 

공사장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김 대표에겐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그는 어떤 답을 했을까. '꼬레아노'(한국인)라고 했을까, '파라과조'(남자 파라과이인)라고 했을까.

 

"장난삼아 답했죠. 저는 '꼬레과조'입니다. '꼬레아노''파라과조'를 반반씩 합친 말이에요. 파라과이 사회 곳곳에서 '꼬레과조'가 활약하는 시대가 곧 올 겁니다(웃음)."


출처: 연합뉴스 (2016.3.11)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6/03/10/0607000000AKR201603102131003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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